[한·일 국교정상화 50년] 대한민국, 광복 이후 받은 원조 더 큰 원조로 되갚다 기사의 사진
광복 직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70년 만에 국제사회의 ‘원조 공여(供與)국’으로 지위가 비약적으로 격상됐다. 우리가 국제 원조를 받은 건 2003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다 갚은 게 마지막이다. 반면 2013년까지 대외 공적개발원조(ODA) 집행 금액은 129억6100만 달러(약 15조3200억원)로, 광복 이후 받았던 원조 규모(127억 달러)를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대한민국은 1945년 광복을 맞았지만 냉전 속 남북 분단을 맞으며 초라하게 출발했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됐지만 6·25전쟁을 거치며 허허벌판이 됐다. 기적같이 일어선 유일한 버팀목은 국제사회의 원조였다. 1945∼1952년 사이 미국의 긴급 구호, 1953∼1962년 미국·유엔 주도의 재건 사업이 이뤄졌다.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던 1963∼1979년엔 무이자·저리 등 일반자금 융자보다 유리한 조건의 양허성 차관이 미국 주도로 투입됐다.

이때까지 사회간접자본 및 수출 지향 사업에 집중 투자한 한국은 1980년 이후 균형 성장을 위한 분야별 투자에 돌입한다. 고도성장을 이루다 1997년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IMF 구제금융을 통해 마지막 위기를 졸업했다.

민주주의와 경제 선진화를 이뤄낸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규모를 넓혀가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3년 만에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원조 공여국’으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ODA 지원 규모도 1993년 1억 달러(약 1182억원)를 넘어 2010년 10억 달러(약 1조1820억원)를 돌파하며 대폭 증가했다.

유엔에서의 위치도 격상됐다. 1991년 유엔 가입에 이어 1996년과 2013년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했다. 나아가 한국인 첫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데 이른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2007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해 한 차례 연임했다.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도 1991년 17개 기구, 139명에서 2013년 기준 59개 기구 479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던 대한민국은 1993년 7월 처음으로 소말리아에 공병대대(상록수부대)를 파견했다. 이후 레바논, 남수단 등에서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인적·물적 공헌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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