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너희도 난민이었던 때를 기억하라 기사의 사진
“너희도 이방에서 나그네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법은 늘 우리 삶에서 책임적 인간이 되는 충실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이방에서 비참하게 죽은 시리아 난민 꼬마 에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터키 해변에서 발견됐다. 책임을 모면해보려던 유럽의 국가들과 세계시민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던져준 큰 사건이 되었다.

올 들어 지중해를 건넌 중동·아프리카 난민은 38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시리아는 5년째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앰네스티 조사 결과에 의하면 시리아 전체 인구 2300만명 중 1160만명이 고향을 등졌다. 시리아 국민 중 절반 이상이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 중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한 사람이 28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의 58%가 시리아 난민이다.

유럽에서 난민이 된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변방에 머무는 가난한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이들의 목적은 난민이 아니라 전쟁 없는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유럽인들에게도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결국은 자국민에게 재앙으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지만, 난민들로 인한 테러의 공포도 또 하나의 두려움이다. 얼마 전 보도로는 난민 가운데 4000여명이 신분을 속인 IS 대원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유다. 다른 한편 진보적 사고를 하는 자유주의 좌파 지식인들은 난민을 만든 체제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시리아 내전과 그로 인해 발생한 난민의 근본 원인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을 나눈 서구 강대국의 이기심에서 찾는다. 인류의 문제는 이러한 이기적 자본주의적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이방에서 객이 된 난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민’의 정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삶의 터전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류 역사는 ‘난민’의 역사다. 유럽 역사에 기록된 롬바르드족의 침략, 게르만족의 대이동, 바이킹 전쟁은 삶을 찾아 이동한 난민들 역사의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지금 사는 땅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구약시대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총리가 되었다. 당시 애굽을 중심으로 한 근동지방에 오랜 가뭄이 찾아왔지만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한 요셉 덕에 그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들 역시 가뭄 탓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져야 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난민이었다. 애굽은 이들 난민을 위해 가장 비옥한 땅 중 하나였던 ‘고센’을 허락했고,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큰 민족을 이뤘다. 이후 새로운 땅을 찾아 거대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그들이 정착한 가나안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법을 주셨다. “새로운 땅에서 너희가 나그네 되었던 때를 기억하며, 너희의 땅에서 나그네 된 사람들을 돌보라는 것이다.”

난민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식고,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과 원인을 지적하는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이 논쟁이 현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려는 이기심으로 보인다. 원인을 찾아내면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에서부터 가벼워지기 때문일까? 신앙의 눈으로 보면 난민의 문제는 ‘논쟁’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해야 할 것을 하라는 것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9월 현재 한국에 난민 신청을 낸 시리아인 768명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3명, 그리고 619명은 단순 체류만 허용되는 ‘인도적 체류허가자’ 신분이다. 신앙은 심오한 지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앞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묻는 것이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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