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그리운 고향 기사의 사진
‘먼 산이 손에 닿을 듯/ 내 가슴속으로 스며오는/ 하얗게 뿌려놓은 고향산천/ 밤하늘에도 하얀 샛별이 홀로 빛나고/ 논두렁에는 흰 별이 내려앉은 고향/ (중략) 새벽 동틀녘 아침이 되면/ 대추나뭇가지에 앉아/ 까치 한 마리 슬피 울어대고/ 참새 떼는 전깃줄에 모여 앉아/ 합창하듯 세상을 노래하고….’

시인 서인석의 ‘그리운 고향산천’에 나오는 시의 일부이다. 가고픈 고향, 그리운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가을바람에 묻어난다.

이제 며칠 후에 다가올 추석명절에는 2500만명이 넘는 성묘객들이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할 것이다. 소슬한 바람이 부는 저녁이면 고향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포탄 도발에 이어 남북한 고위급 접촉에서 극적으로 합의된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소식은 70여년 세월을 이산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다. 북한 공산정권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뼈를 마르게 할 정도다. 부모 혈육을 두고 자유를 찾아 온 사람들은 평생을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없는 그리움과 외로움, 슬픔으로 가득 찬다.

필자는 1·4후퇴 때 가족과 헤어져 홀로 남한에 내려온 뒤 평생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살아온 한 실향민의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그분은 함경남도 이원 출신의 고기잡이 배 선주로 바다에 나갔다가 1·4후퇴를 만났다. 육지에 배를 대지 못하고, 잠시 피신해 있다가 돌아갈 생각으로 가족을 두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전쟁은 2년이나 더 지속됐고, 휴전이 된 뒤에는 남북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그분은 남한에서 새 가정을 꾸리고 통일될 날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긴긴 겨울밤에는 기다란 대나무 담뱃대를 물고 깊은 상념에 잠겨 고향생각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여름밤에는 무더위를 피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언덕에 돗자리를 깔고 모기장을 설치했다. 그 속에서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공산정권이 얼마나 무서운지 설명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그분의 아픈 기다림을 외면했고, 그분은 영원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남한 땅에 묻히고 말았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은 아직 수십만명이나 된다. 대부분 고령이어서 통일을 보지 못하고 남한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형편이다. 살아생전에 그리운 고향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철조망은 언제 걷힐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돼 오는 10월 20일부터 200명의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만난다니 저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 이번에 상봉을 신청하고도 탈락한 사람들은 언제 헤어진 혈육을 만날 수 있을지, 또 길고 긴 기다림을 이어가야 한다. 남북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해석 없이 최우선적으로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유럽은 내전을 피해 시리아에서 몰려드는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어린이 쿠르디의 비극은 난민들의 참혹한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시리아 내전이 끝나지 않는 한 고향을 떠나는 난민들의 탈출행렬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는 전쟁과 경제 문제로 고향을 떠나고 가족과 헤어져 사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국내에도 다문화 이주민과 불법체류자가 수백만명에 이른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실향민과 한부모·다문화 가정, 불법체류자들에게 올 추석은 풍성한 날이 됐으면 좋겠다. 시골 고향 교회에도 방문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떡과 복음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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