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미나] 에일란 쿠르디를 안다는 것은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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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조카 희영이가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한 팔에 쏙 들어올 만큼 작은 생명. 아기가 잠들었을 땐 혹시나 숨을 멈춘 게 아닐까 불안해 코 밑에 손가락을 대봤다. 웃고 울고 잠든 얼굴을 시도 때도 없이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내기 시작하고 굳은살 하나 없이 말랑말랑한 발바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에 가슴 졸이고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가 다친 것보다 더 아팠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울고 떼쓰는 모습까지도 예뻤다. 가족은 아이 덕분에 행복했고 집안엔 언제나 웃음이 흘렀다. 한 생명이 세상에 줄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나는 그때 느꼈다.

세 살배기 에일란 쿠르디도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땐 온 가족이 기쁨에 휩싸였고 첫걸음을 내디뎠을 땐 집안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을 게다. 온종일 형 갈립 쿠르디(5)와 공놀이며 그림그리기, 말 타기, 간지럼 태우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 뼘 한 뼘 키가 자라면서 가족과 친척의 자랑이 됐을 거다. 하얀색 곰 인형 사이로 쿠르디 형제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엔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담겨있다.

지난 2일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세계를 울린 것도 그 때문이다. 에일란의 가족이 브로커에게 돈까지 쥐여주며 도망치듯 떠나온 시리아. 안전장치 하나 없이 허술한 배를 탈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 시대의 민낯을 마주하자 시리아 난민 문제는 한순간에 우리의 일로 다가왔다. 아픔도 슬픔도 모른다는 듯 평온한 포즈로 모래사장에 엎드려 있는 에일란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희영이가 가족에게 준 기쁨을 알기에 나 또한 에일란이 그 주변에 나눴을 기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꼬마 에일란을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던 현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은 에일란 사진을 계기로 난민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가마다 온도차를 보이며 갈기갈기 찢어진 모양새가 연일 뉴스에 오른다. 유럽만의 숙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해 이들의 지위와 처우에 대한 사항을 구체화했다. 지난 21년간 우리나라에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1만1172명, 이 중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496명이다.

94년부터 지난 5월 말까지 시리아인 713명이 국내에 난민신청을 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3명이다. 577명이 인도적 체류 신분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는 30여명의 시리아인이 모였다. 이 가운데 1명이 난민 지위를 받은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인도적 체류 신분이었다. 시리아인이 한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동차 폐차장이나 부품 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시리아와 우리나라 사이에서 자동차 무역이 비교적 활발해 그나마 이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2011년 이전 사업차 국내에 들어왔다가 내전 발발로 귀국하지 못한 경우다. 본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교사로, 사업가로 일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난민을 좌절하게 하는 것은 8할이 기본권리 문제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때의 절망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적어도 2∼3년씩 이어지는 지난한 난민심사 과정에서 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증폭된다. 심사를 받을 땐 모욕이라 느낄만한 상황도 자주 겪는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는 의심의 눈초리는 그들 마음에 멍으로 남는다. 갓난아기부터 한창 교육을 받아야 할 청소년 자녀들을 돌볼 수 없다는 죄책감도 크다. 하루 두 끼 햄버거만 먹고 송환대기실에서 수개월을 기다리다가 받은 서류엔 ‘당신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그 상실감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난민 수는 5950만명이다. 인구 규모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24위 수준이다. 한 국가 공동체로 봐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현재 국회엔 난민법 개정안 8개가 계류 중이다. 난민의 미성년 자녀에게 보육을 지원하거나 난민인정 심사기준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제 우리는 에일란을 안다. 안다는 것에 책임이 있다.

김미나 사회부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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