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중국동포인 엄마에게서 ‘생생한 중국어’ 배운다 기사의 사진
박금령씨와 김태희양 모녀가 19일 인천 경인교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서로 꼭 끌어안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경인교대에서 열린 가을 운동회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단체전 게임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인천=이도경 기자
한국생활 11년째인 박금령씨와 10살 딸 김태희양

어머니가 중국동포인 김태희(10)양은 중국어 공부가 어떤 것보다 싫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머니에게 억지로 붙잡혀 중국어를 배우는 시간은 곤욕이었다. 어머니의 중국어 교습은 여섯 살 때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그냥 해야만 하는 걸로 알았다. 하지만 주변 아이들은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뒤로 태도가 달라졌다. “이거 왜 해야 해요?” 울면서 거부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아이는 반항했다.

어머니 박금령(41)씨는 태희에게 중국어라는 ‘무기’를 꼭 쥐어주고 싶었다. 박씨는 2004년 입국해 한국생활 11년째다. 한국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사회인지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중국어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는 중국어로 아이와 대화하려 했다. ‘유난을 떤다’는 주위의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아이는 시큰둥했다.



“자신감 없으니까 공부 못하는 것”

반항과 강요, 설득이 반복되면서 박씨는 태희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점점 지쳐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태희의 태도가 달라졌다. 계기는 어머니 나라의 말을 가르쳐주는 ‘글로벌 브리지’ 언어 프로그램이었다.

태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상황의 또래들을 만나면서 중국어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태희는 “나 혼자만의 공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같이 공부하니까 재미가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태희는 자신보다 중국어를 잘하는 아이를 보며 경쟁심이 발동했다. 차츰 중국어는 ‘또 하나의 힘든 공부’에서 ‘나만의 강점’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와의 갈등은 사라졌다. 요즘에는 중국어에 능통한 어머니를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모녀는 밖에서는 한국어로, 집에서는 중국어로 대화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태희는 운이 좋았다. 다문화 교육과 관련해 정보가 많은 어머니를 둬서다. 박씨는 다문화 언어강사로 일선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그는 “엇나간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자신감 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닙니다. 자신감이 없으니까 못하는 거라고 봐야 해요”라고 했다.

특히 “피부색이나 외모가 다른 동남아시아 출신 어머니를 둔 아이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져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다문화 아이들은 사춘기로 접어드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초등학교 단계부터 적극 개입해 자존감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현장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겪으며 내린 결론이다.

박씨는 “먹는 걸 나눠준다든지, 다문화 관련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가 너무 많아요. 그런 방식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라며 “자신감이 있으면 아이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정부가 아이들 자신감을 세워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냥 아이, 다를 건 없다”

지난 19일 인천 계양구 경인교육대학에서 박씨와 태희를 만났다. 이날 글로벌 브리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가을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 이름은 ‘미니 올림픽’. 중국 일본 몽골 출신의 어머니와 다문화가정 아이들 100여명이 모였다. 경인교대는 교육부의 글로벌 브리지 프로그램을 수탁 운영한다.

일반 운동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돗자리를 깔고 앉은 어머니들의 수다가 다채로웠다. 여러 언어가 웃음소리와 뒤섞여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운동회는 청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겨루는 단체전 위주로 진행됐다. 돌고래 모양 튜브를 들고 이어달리고, 플라스틱 소쿠리에 여러 갈래로 끈을 묶어 과자봉지와 풍선을 튕기는 게임이 이어졌다. 빨리 달리려다 넘어진 아이, 반칙을 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는 아이, 풍선 튕긴 횟수를 착각해 곤란한 선생님….

경인교대 한국다문화연구원 김경숙 박사는 “다문화 아이들을 보면 어머니 국적별로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몽골인 어머니를 둔 아이들은 거칠면서도 활달하다. 유목민 기질이 남아 있는 듯하다. 일본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초반에는 친해지기 어렵고 서먹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아직 어려서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그냥 아이들이다. 커가면서 어머니 영향이 줄어들면 한국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은 다 똑같은데 어른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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