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한가위에 ‘대형 보름달’이 뜬다는데 기사의 사진
한가위가 코앞이다. 벌써부터 정겨운 고향 그림이 그려진다. 솔잎 향기가 진동하면서 송편을 찌는 시루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송편이 익어가고 밤이 깊어질수록 가족의 정(情)도 그윽해진다. 오순도순 모여앉아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면서 웃음은 끊일 줄 모른다. 달빛의 밝음을 무게로 읽어내는 어머니, 산에서 정성껏 솔잎을 장만해 오셨을 아버지, 그리고 푸짐한 보름달 아래서 송편 맛에 푹 빠져있는 온 가족.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는 것, 이게 바로 우리네 한가위 풍경이다. 이런 추억을 음미해보고자 고달픈 길이지만 너도나도 고향으로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힘들거나 지칠 때 고향은 삶의 안식처이자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그런 존재다.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추석은 풍요로운 결실을 담은 민족 최대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더구나 올 한가위에는 ‘슈퍼 문(super moon)’이 뜬다고 한다. 달빛을 벗 삼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생각만 해도 고향길이 설렌다. 연휴에 3200만명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보여 올해도 ‘귀성전쟁’이 불가피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이지만 그래도 고향 가는 길은 언제나 낙락하다.

하지만 민족 대이동에 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취업 준비에 여념 없는 청춘들, 실직 등으로 거리나 쉼터에서 보내는 노숙인들, 가족해체로 늘어나는 독거노인들…. 이들에게 고향은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그런 곳일 게다. 올해는 취직 공부에 묶여 고향에 가지 못하는 대학생이 많아진 모양이다. ‘귀포자(귀성을 포기하는 자)’가 늘면서 대학가 귀향 버스마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시간이 아까워 컵밥으로 때우는 학원가의 청년실업자에게 명절은 그저 ‘공부하는 날’ 중 하루일 뿐이다. 어느 조사에서는 취업준비생 10명 중 7명이 “취직은 했니?”라는 말이 듣기 싫어 귀향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굳이 높은 청년실업률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명절은 남의 일이 된 지 오래다. 청년백수에게 명절은 또 다른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찾아갈 고향이 없거나 고향에 가도 함께할 가족이 없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타향에서 쓸쓸히 바라만 봐야 하는 이들의 처지가 형영상련(形影相憐)이라고나 할까. 몸과 그림자가 서로 의지할 뿐이다.

‘무엇을 하다가 이겼다는 자들이여/그 이긴 기쁨만에 취하들 말고/그대들에게 져서 우는 자들의/설움을 또 같이 서러워할 줄 알라.//그리고 무얼 하다가 졌다는 자들이여/찌푸러져 웅크리고 앉았기보다는/일어서서 노래 불러 춤출 줄을 알아라.//서럽고도 또 안 서러울 수 있는 자여/한가윗날 달빛은 더 너희들 편이어니.’

생전 중추가절을 자주 읊었던 미당 서정주 시인의 ‘팔월이라 한가윗날 달이 뜨걸랑’이다. 시인은 이긴 자들에겐 남을 위한 배려를, 축 처진 이들에겐 용기를 주문한다. 누구 한 편의 소유가 아닌, 골고루 뿌려주는 넉넉한 달빛을 가슴에 담아가라고 노래한다.

한가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리 가슴에 퍼 담아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떠오르는 보름달은 모든 이에게 고루 환하게 밝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일부터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자. 나보다는 타인을, 가족보다는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넉넉함을 가져보자. 그러면 더 많은 구성원이 행복해질 수 있는 한가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풍요로운 둥근 대형 보름달처럼 말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