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길 다시 가보니-임항] 태백산 주목군락에 흩뿌려진 단풍 기사의 사진
태백산 정상의 주목 고사목. 태백=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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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자연에게 뺄셈과 외로움의 계절이다. 농부는 오곡백과를 거두지만, 숲은 열매와 잎을 버림으로써 여름 내내 축적한 에너지를 스스로 감축한다.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 지난 21일과 22일 보통 겨울에 많이 찾는 태백산과 함백산으로 향했다. 주능선이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는 두 산은 해발고도가 각각 1567m와 1573m로 높은 산이지만, 비교적 높은 곳까지 도로가 나 있는 데다 주능선 탐방로가 평탄한 육산이다. 그래서 백두대간꾼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겨울철에는 눈을 뒤집어쓴 주목 군락이 장엄하다. 태백산에는 그밖에도 건국신화와 역사유적이 깃들어 있고, 이어진 금대봉과 태백시는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황지연못를 품고 있다.

22일 오전 태백산 유일사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이날 산행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나공주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태백산 일대를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나 실장은 현재 도립공원인 태백산의 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여론수렴 작업을 맡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의 지난 4월 초 국립공원 지정 건의안에 따르면 태백산국립공원은 태백시와 정선군에 걸친 99.7㎢ 규모로 태백산(49.3㎢), 함백산(41.3㎢),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호지역(9.1㎢)을 포함한다. 나 실장은 말했다. “태백시민, 정선군민들은 함백산의 석탄산업, 태백시의 리조트산업으로 비교적 단기간의 영고성쇠를 겪고 난 뒤 지쳐 보인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자연도 힐링이 필요하고, 그 좋은 방법이 국립공원 지정이다.”

다양한 가을 야생화도 탐방로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까실쑥부쟁이, 투구꽃, 노랑물봉선, 산부추, 진범, 구릿대, 미역취 등등. 가을철이라 구절초, 벌개미취, 쑥부쟁이, 고들빼기 등 국화과 꽃이 많은데 구별이 쉽지 않다. 일단 구절초는 꽃이 대부분 흰색이고, 쑥부쟁이나 벌개미취와 달리 잎이 쑥처럼 갈라져 있어서 구별하기가 쉽다. 벌개미취는 잎이 길고 잎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지만, 쑥부쟁이는 작은 잎에 굵은 톱니를 갖고 있다.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도 구별하기 어렵다. 일단 쑥부쟁이 잎의 톱니가 개쑥부쟁이보다 훨씬 더 뚜렷하다. 더 쉽게는 산과 들의 마른 땅에서 발견되면 개쑥부쟁이, 논둑이나 습지 주변에서 발견되면 쑥부쟁이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그냥 들국화라고 부르지만, 들국화라는 종은 없다. 그러나 들국화라는 통칭으로 불러도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지장은 없다. 시인 천상병도 그랬나 보다.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쳐진 이 순간이….’(‘들국화’ 전문)

유일사에 닿기 직전에 주목 보호수 앞에 도달했다. 키가 15m, 가슴높이 직경이 1m를 넘는 주목은 초가을답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찌르듯이 솟아 있다. 여기부터 산림청이 지정한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다. 해발 1260m인 유일사 쉼터부터 정상인 장군봉까지 1.7㎞ 탐방로 주변에는 주목과 그 고사목, 분비나무, 잣나무가 많다. 백두대간의 고지대를 따라 군락을 이루는 주목은 완만한 능선을 지닌 태백산이나 소백산의 경관에 특히 잘 어울린다. 태백산도립공원에 따르면 태백산의 주목은 총 2805그루로 국내 주목 서식지 중 가장 큰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정상인 장군봉에서 가까운 함백산,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가 유명한 매봉산, 멀리 두타산까지 보인다. 장군봉 주변 천제단(天祭壇) 3곳 중 하나인 천왕단에서 문수봉, 당골 쪽으로 보는 첫 단풍이 장관이다. 주로 시닥나무와 철쭉 등의 단풍이다. 검푸른 분비나무와 주목 사이로 마치 피를 흩뿌려 놓은 것 같다. 만경사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은 1457년 영월에서 숨진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고 마을 주민들은 믿었다. 오늘도 비각 앞 제단에는 잘 익은 포도 한 송이가 올려져 있다.

태백산국립공원 지정계획 지역에는 산양, 기생꽃, 대성쓴풀, 복주머니란(개불알꽃) 등 멸종위기종 26종을 비롯한 2837종의 야생생물이 서식한다. 태백산이 결국 국립공원이 될 것인지, 되더라도 계획 면적보다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영월·정선군에서 반대했지만 최근에는 태백시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 계획 면적의 대부분인 국·공유림을 관할하는 산림청과 환경부의 갈등 등 걸림돌이 많다. 이 가을 맑은 하늘 아래 태백산은 외로워 보인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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