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단체교섭권 확대 적용은 왜 빠졌나 기사의 사진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곳곳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여야 등 장외의 이해 관계자는 물론 합의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합의의 평가와 합의문의 해석 및 후속 절차를 놓고 중구난방, 상호비판, 일방적 추진 의지 압박 등이 잇따르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어렵사리 이루어진 이번 합의 내용이 미흡하다고 해서 시대적 과제의 중차대성, 급박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노사정 합의문의 핵심은 정규·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일컫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과 근로시간, 통상임금, 정년연장 등 3대 현안이다. 두 의제의 지향점은 실제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하고,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더욱 공정하고 유연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다. 5대 의제와 14개 세부과제는 그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이 목표들이 사라지고, 지엽적 세부과제만 부각되는 본말전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관련 항목들은 단계적 법 적용과 숱한 예외로 얼룩져서 공수표와 다름없다.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핵심 과제, 특히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및 규제 합리화 과제들은 대부분 내년 이후 과제로 넘어갔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제 하나는 아예 통째로 중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고, 단체협약의 효력과 단협 체결권을 비조직 노동자들에게도 확대·적용하는 문제다.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스스로 파이의 배분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 대책임은 자명하다. 물론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조직 노동자 가운데 원할 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재의 노조 조직률 10%는 단결권에 제약이 많다는 방증이다. 반면 조직률이 역시 10%대인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노조 결성을 말과 행동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박정희정부는 ‘몇 명의 위원장만 통제하면 고분고분해지므로’ 산업별 노조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전두환정부는 1980년 말 산별노조를 해체하고, 기업별 노조체제로 전환했다. 복수노조와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노조조합비 상한선까지 설정했다. 오늘날 기득권 노조나 ‘귀족’ 노조는 그런 정부와 기업의 합작품이고, 따라서 상당 부분 그들의 책임이다. 산별체제가 유지됐더라면 적어도 양극화 현상이 지금처럼 극심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산별교섭 체제에서는 동일직무에 동일임금 원칙이 비교적 잘 적용되고, 임금과 근로조건이 업계 평균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휴일근로의 초과근로시간 포함,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 등 지금까지 합의한 내용 대부분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법을 적용했던 ‘비정상’의 정상화에 불과하다. 그동안 노동시간을 비롯한 근로기준 규제에 숱한 예외를 만들고, 단결권을 제한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던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부가 그들의 편파성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노사가 평평한 운동장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로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따위의 거짓말과 모금행위를 걷어치워라. 노사정은 개혁에 대한 광범위하고 강력한 사회적 공감대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3자 합의정신을 외면한 채 미합의 항목 가운데 사용자에게 유리한 것만을 담은 법 개정안을 호시탐탐 강행하려 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진다면, 그것은 김영삼정부가 그랬듯이 노동관계법 개정 때문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