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유나] ‘부자’라는 꿈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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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세계적 해킹 방어대회인 ‘데프콘(DEFCON)’에서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데프코(DEFKOR)’를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흘 동안 각 나라를 대표하는 팀들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이 경기에서 한국팀이 미국까지 날아가 처음 우승을 거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이버 보안 분야의 미래를 이끌어갈 화이트 해커들의 실력이 세계 최고임을 검증받은 자리이기도 했다.

최 장관은 대회에 참가했던 한 학생에게 “꿈이 뭔가요?”라고 질문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는 “세계적인 IT 기업을 만들고 싶다”라든가 “국내 소프트웨어(SW)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식의 대답을 예상했을 것이다. 질문을 받은 한 학생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부자가 되는 거요”라고 답했다. 순간 최 장관이 짓던 멋쩍은 웃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최 장관은 웃으며 “롤 모델 같은… 그런 꿈이 있지 않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 학생은 “돈이 많은 사람이 롤 모델이에요. 그런 의미라면 세계적으로 성공한 IT 기업 창업자요?”라고 답했다.

스티브 잡스(애플),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세르게이 브린·래리 페이지(구글), 마윈(알리바바)…. 아마도 학생이 생각했던 ‘롤 모델’은 이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세계적 IT 기업을 일군 이들은 높은 명성만큼이나 많은 돈을 거머쥐었다. 빌 게이츠는 자산이 760억 달러(약 90조7400억원)로 22년 연속 ‘미국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고, 올해 마크 저커버그가 403억 달러(약 47조6100억원)로 7위, 래리 페이지가 333억 달러(39조3000억원)로 10위에 올랐다. 구글 창업자인 페이지와 브린의 재산을 검색해보니 지난 7월에는 구글 주가가 16% 오르면서 이들의 재산이 하루 만에 40억 달러(약 4조7200억원)씩 늘어났다는 기사도 보인다. 돈이 늘 모든 성과를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기준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부자’에 ‘성공한 창업자’일 것이다.

학생이 꾸는 ‘부자’라는 꿈은 자신의 성과와 능력을 합당한 액수로 보상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일 거라 믿고 싶다. 그만큼 기술과 아이디어로 겨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길 바란다. 실제로 SW 분야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의 성공 사례가 자주 들리는 곳이다. 한 순간에 서비스가 대박나면서 거액의 투자를 받기도 하고, 또 잠재력을 인정받아 큰 기업에 인수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 사례도 많다.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2∼5년차 스타트업들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죽음의 계곡에서 조력자를 만나면 ‘부자’와 ‘성공’이라는 대박의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조력자를 만나지 못한 이들은 바닥이 어딘지 모를, 계곡 깊은 골짜기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스타트업을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다수 SW 인력들은 IT 업체에 소속돼 하청의 하청을 거듭하는 값싼 프로젝트를 찾아다니며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IT 기업의 인력을 프리랜서가 아닌 또 다른 기업 소속 인력으로 대체하는 ‘IT 인력 공유 플랫폼’이 생겨났을 정도다. 정부가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SW 사업의 경우 원 수급사업자 자체 수행 비중이 10% 미만인 사업이 전체 33.3%(직접인건비 기준)에 달한다. 예를 들어 100만원 규모의 SW 사업은 3차 이상 하도급 차수가 거듭되면 4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SW 사업의 품질뿐 아니라 인력에게 지급될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올해 12월 31일부터는 ‘적절한 보상’을 핵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진행된다. 공공SW 사업에서 원 수급자는 50% 이상 하도급을 할 수 없고, 하도급자가 합리적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법을 통해 2016년부터는 2차 하도급자의 경우 15%, 3차 이상 하도급자는 30% 이상의 수익을 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민간 SW 영역까지 힘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SW 인재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만으로 희망적이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당연히 부자가 되는, 그래서 더 이상 ‘부자’가 꿈으로 언급될 수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김유나 산업부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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