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리즈 Ⅱ] “北체제 변화보다 남북한 신뢰쌓기 차원서 추진을” 기사의 사진
베를린 시민들이 1990년 10월 3일 0시 옛 독일제국의회(Reichstag) 건물 앞에서 동·서독 깃발 대신 연방독일 국기를 게양하며 환호하고 있다. 이날은 양독 정부가 사전 체결한 통일조약에 따라 ‘통일 독일’을 처음으로 공식 출범시킨 날이다. 독일연방기록물보관소 제공
북한 전문가들은 ‘프라이카우프’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 현실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전쟁을 치르지 않아 상호 적대의식이 적은 데다 통일 이전부터 동서 간 인적 교류와 협력이 비교적 활발했던 독일과 달리 장애물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납북자 또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송환 부분에서부터 프라이카우프를 추진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프라이카우프, 필요성은 충분…과정이 문제=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프라이카우프가) 비현실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아직 시기상 준비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성격은 동서독 관계와 차이가 있다”면서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프라이카우프를 시행하기 위한 토양이 너무 척박하다”고 지적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프라이카우프의 선제 조건으로 남북 간 ‘신뢰’를 꼽았다. 그는 “현안이 있을 때 결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과정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남북 간에는 이 점이 어렵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도출된 ‘8·25합의’에 의미를 둘 수 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8·25합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등장 이후 강도 높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나온 첫 합의”라면서 “이 점이 중요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의 협력 없이는 가능한 일이 없는데 그런 협력을 받아낼 행동양식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또한 “(프라이카우프는) 사실 상당히 늦었다. 지금이라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남한에서는 대북 지원조차 ‘퍼주기’ 논란이 나오고 있다. 현금·현물을 북에 제공할 수 있을지, 북측은 또 그것을 받아줄지…”라면서 현실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 및 국군포로·납북자 송환부터 추진해야=전문가들은 돈을 주고 정치범을 송환하는 독일식 프라이카우프가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정치범 송환을 북측이 받아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산가족 상봉이나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등 한반도 상황에 맞도록 프라이카우프를 응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 동독의 경우와 같은 정치범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며 있더라도 대부분 사형당했을 것”이라면서도 “(프라이카우프에서) 응용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산가족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자연적 수명이 다한 고령자들의 애환을 달래주자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독일의 프라이카우프는 공식적으로 교회가 주도하고 정부가 재정을 대는 형태였던 반면 남북관계에서는 민간 차원 교류 및 시민사회와 교계 등의 영향력이 약해 정부 주도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납북자, 이산가족 관련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 또한 “공론화 과정에서 여러 논쟁은 있겠지만 이산가족 상봉과 국군포로 송환에서는 가능성이 있다”며 “생사 확인과 상봉, 서신 교환 등 활동에 일정 비용을 지출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대가는 협력기금 방식으로 현금 또는 현물을 지급하는 형태를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카우프는 개연성 희박”…회의적인 반응도=일각에서는 프라이카우프의 현실성·효용성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이 쉽게 사람들을 내줄지부터 의문”이라며 “어떤 사람을 선택할지부터 북측이 과연 이들을 송환할지, 돈은 얼마나 줘야 할지, 여론 반응은 어떨지 따져본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말했다.

황 명예연구위원은 “정부가 (프라이카우프를) 추진한다 해도 언론 등에서 체제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에서 역효과를 감지하고 섣불리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남북관계와 독일의 동서관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안보불안이 없어야 교류협력도 가능한데 한반도에서는 그런 여건이 쉽게 생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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