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훈]  사람 중심 경영으로 돌아가라 기사의 사진
노동개혁에 대한 노사정 논의가 재개된 지난 8월 말 경제5단체는 ‘노동개혁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을 내놓았다. 골자는 ‘엄격한 해고규제로 인해 능력이나 성과와는 무관하게 고용이 보장’되는 내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만드는 주요 원인인 만큼 ‘청년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는 ‘연공급제를 타파하고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성과주의에 기초한 보상제도 개혁에 대한 경제계의 주장은 언뜻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실제 고용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2015년 기준으로 14.6개월에 불과하다. 그것도 2006년 18.2개월에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평생 동안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의 평균 근속기간은 2006년 17년 3.1개월에서 2015년에는 14년 9.4개월로 10년 남짓한 기간에 2년6개월이나 줄어들었다.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 현실을 경제계는 대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은 호봉제나 고정 상여금 등 연공주의 보상제도의 틀을 성과주의에 기초하여 전면적으로 개편해 왔다. 이에 따라 적어도 민간 대기업의 관리직, 사무직, 기술·개발직, 영업직 등 화이트칼라 부문에서는 이미 성과주의에 기초한 보상관리가 지나칠 정도로 침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사례가 이런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통신서비스산업의 대기업 L사에 상무로 재직 중이던 사람이 실적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2012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법원은 지난 9월 초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여 원고승소 판결했다. 카이스트 출신인 이 임원은 44세의 나이에 L사 최연소 상무로 발탁된 다음 46세의 한창나이에 숨지기까지 쉬는 날 없이 하루 평균 회사에서 13시간 내지 15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대기업 화이트칼라 부문에서는 회사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리직이나 평직원 할 것 없이 모두 기업의 단기적인 재무적 성과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에 대한 평가 결과에 따라 개인별로 차등적인 보상이 이루어진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무시한 강박적인 조직문화, 구성원들의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성과주의의 확산이 근로자들의 조직에 대한 일체감의 상실은 물론 소중한 인재들을 조기에 ‘번아웃’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제계는 심각히 현실을 되짚어봐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상시 구조조정이 추진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 경우에도 외부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수시로 끌어다 쓰고 필요 없어지면 방출하는 고용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최근 잇달아 제기된 박병원 경총 회장의 정년제 폐지 주장에는 이 같은 경제계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년제 폐지란 곧 정년에 이르기까지 장기에 걸친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근로자를 투자가 아니라 비용의 개념으로만 인식하여 언제라도 쓰고 버리면 된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그러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임은 자명하다. 성과주의에 입각한 보상제도의 개혁을 주장하기 이전에 경제계는 기업이 보유한 인적 자산이야말로 경쟁력의 지속적인 원천이라는 인식부터 명확히 다져야 한다. 사람 중심 경영으로 돌아가라.

김훈 한국노동연구원 명예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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