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멘토’ 한국 언니 덕분에 받아쓰기 달인 됐어요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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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 한국 온 오랑거양과 우정임씨

기억나는 건 비행기뿐이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네 살배기 소녀는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냥 들뜨기만 했었다. 어트건버르드 오랑거(8)양은 2011년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어머니는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1년 먼저 한국에 정착했다. 아이는 한국생활 4년 만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와 떡볶이를 꼽고, 한국 친구들의 공부를 도와줄 만큼 자랐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오랑거에게 한국 '사촌언니' 우정임(21)씨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한양대 관광학과를 다니는 우씨는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주관하는 다문화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의 '나눔지기'(멘토)로 '배움지기'(멘티) 오랑거를 만났다. 우씨는 기초 교과목 학습을 도와주고 학교생활 적응을 거들었다. 오랑거는 부모가 모두 몽골 출신이라 다문화학생 중에도 손길이 절실한 편에 속했다.

“한국 ‘사촌언니’가 생겼어요”

첫 만남을 준비하던 우씨는 오랑거가 낯을 가리지만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걸그룹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를 연습해 갔다. 오랑거는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떨리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함께 춤을 추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매주 화요일 오랑거가 다니던 서울 성동구 동명초등학교나 근처 카페, 집에서 주로 만났다. 집과 가까운 청계천문화관도 아지트였다. 우씨는 국어 받아쓰기 문제집과 수학 문제집을 구입해 일정 분량을 규칙적으로 풀 수 있도록 지도하고 틀린 문제를 함께 살펴봤다. 영어를 유독 어려워하던 오랑거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림카드를 보고 영어단어를 맞히는 식의 놀이활동도 했다. 아이는 한국어가 서툰 부모에게 못했던 질문을 우씨에게 마음껏 쏟아냈다고 한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거나 함께 나들이를 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오랑거는 차츰 우씨를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언니’로 부르게 됐다. 우씨는 “단짝 친구들에게 나를 ‘사촌언니’로 소개할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며 활짝 웃었다.

1년간 멘토링을 받으면서 오랑거는 받아쓰기의 달인이 됐다. 80점 아래로 떨어져 본 적이 없고, 100점을 받은 횟수는 셀 수도 없다. 반 친구들의 받아쓰기 연습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가족 중에서 한국어 실력이 가장 뛰어난 오랑거는 아버지와 동생의 한글 선생님 노릇도 한다. 한국 생활을 먼저 시작한 어머니가 어려워하는 단어도 막힘없이 설명하며 가족의 한국 적응에 힘을 싣고 있다. 영어에 자신감도 붙었다. 교회에서 주일마다 영어예배를 드릴 정도다.

꿈 많은 ‘동네 활력소’

우씨는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관계나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멘토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오랑거가 위축돼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컸는데 오히려 골목에서 처음 만나는 어른과도 인사를 나누며 동네의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랑거는 입학한 지 1년 만에 전학을 했는데도 새 학교에 빠르게 적응할 정도로 활달하다. 방과후 활동으로 바이올린과 방송댄스를 배우기도 한다. ‘새노(안녕)’같이 간단한 몽골어를 알려주면 몽골을 궁금해 하는 친구들 반응이 뜨겁다. 오는 14일 걸그룹 에이핑크의 노래 ‘리멤버’로 학예회 무대에도 오른다.

오랑거는 꿈이 많은 아이다. 한국과 몽골을 오가는 가수,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다가도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어머니와 씨름 선수 생활을 했던 아버지 뒤를 이어 스케이트·축구·수영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예쁜 옷을 만들어 부모에게 선물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거나 몽골어 실력을 발휘해 항공 승무원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오랑거는 “꿈이 많은 만큼 열심히 노력하겠다. 양이랑 말을 좋아하는데 서울에 온 뒤로 보지 못한 점과 몽골에 계신 할머니가 보고 싶은 것만 빼면 한국생활이 아주 맘에 든다”고 했다.

우씨와 오랑거의 멘토링은 오랑거가 올해 중랑구로 이사를 하고 전학을 가면서 138시간으로 끝났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만남은 이어지고 있다. 2주에 1번씩 함께 장을 보러 다니거나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가기도 한다.

우씨는 “우리는 서로 매우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멘토링을 계기로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게 된 나처럼 더 많은 사람의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다문화가정이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씨는 열정을 인정받아 지난해 우수 나눔지기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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