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TK 왕따시대 기사의 사진
얼마 전 대구·경북(TK) 출신 공기업 사장에게서 들은 얘기다. “요즘 업무차 전국을 다녀보면 TK에 대한 시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싸늘합니다. TK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TK 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왕따란 느낌입니다.”

박근혜 TK정권에서 TK가 왕따라니, 정말일까. 지난 주말 TK 출신 전·현직 고위 공직자와 중견 언론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TK왕따론’을 화제에 올려봤다. 몇몇 참석자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왕따란 표현은 과장됐다면서도 예전에 비해 고립감을 많이 느끼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정부 인사에서 특혜가 거의 없는데도 그런 눈총을 받는 게 억울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얼치기 TK에 속하는 내가 보기에도 TK 고립 현상은 사실에 가깝지 않나 싶다. 지역적으로 정치적 동반자이면서 경쟁자라 할 수 있는 부산·경남(PK)과 달리 뚜렷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작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대선주자 지지율을 살펴보면 선두권을 형성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문재인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은 모두 PK 출신이다. 여권의 선두주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PK에 속한다. 그에 비하면 대구에서 총선 맞대결을 준비 중인 새누리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의 지지율은미미하다. TK 이외 대부분 지역에서 ‘TK 대선후보’ 출현을 꺼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지나친 추측일까.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전통적 고립 지역은 호남이다. 하지만 TK 고립과 호남 고립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특유의 응집력과 타 지역에 대한 배타주의가 고립을 자초했다는 점은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남의 배타성이 ‘못 가진 자’의 불만에서 비롯됐다면 TK의 그것은 ‘가진 자’의 거만한 기득권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오랫동안 정치권력을 독식하면서 상생의 마인드를 키우기보다는 ‘끼리끼리 문화’에 길들여진 결과란 얘기다. 서울 등 수도권에 근무하는 일부 TK 출신 공직자들이 투박한 사투리를 굳이 고치지 않는 것 또한 이런 집단 심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 횡포와 특권의식에 대한 반성은커녕 거들먹거린다는 인상을 주다보니 어느새 밉상이 돼버린 게 아닐까.

사실 호남에 대해서는 타 지역민들이 역사적, 정신적 부채감을 갖고 있지만 TK에 대해서는 그런 것도 없다. 거기다 전남 순천·곡성 유권자들이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금배지를 달아준데 반해 대구 유권자들은 김부겸 전 의원을 두 번 연거푸 외면했으니 TK가 타 지역민들로부터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노무현정권 탄생을 계기로 호남과 합력(合力)이 가능한, 진보세력이 자랄 수 있는 곳으로 각인된 PK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대표와 대립하고, TK 지역 공천에 ‘내 사람 심기’ 등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TK 고립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TK가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배타적 응집력을 과감하게 풀고 국민 대화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 크고 작은 선거에서 극우보수 철옹성을 지키려는 수구적 태도를 버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낮은 수준의 대외 확장성으로는 재집권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TK 출신 공직자들은 흔히 “터지고 깨지는 것이 TK”라고 말한다. 도움은 안 되고 욕만 먹는다는 일종의 자조(自嘲)다. 더 이상 터지고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불어 살기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독불장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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