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귀족 난민 기사의 사진
유럽 교회는 영적 판단능력을 잃은 것일까. 지난달 중순 유럽 난민 취재를 하며 줄곧 이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 더 나아가 이슬람 난민에 대해 유럽 교회가 이렇다할 성서적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 취재를 위해 찾았던 터키 앞 바다 레스보스섬은 그리스령으로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조금 더 큰 섬이다. 이 섬에 아프가니스탄 등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 지는 7∼8년 됐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면서 수백만 시리아 난민이 고무보트 등에 의지해 목숨 걸고 에게해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했다. 터키 본토에서 10∼15㎞ 떨어진 레스보스섬은 ‘유럽 난민’의 관문이 됐다.

그 난민 취재를 위해 레스보스섬 중심도시 마틸리니 펜션형 숙소에 짐을 풀었을 때 당혹스러운 경험을 해야 했다. 난민 직격탄을 맞은 레스보스 주민들은 경기 침체로 울상이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 역시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였다. 덕분에 불과 한국 돈 3만원에 수영장이 딸린 이 바닷가 펜션을 얻을 수 있었다. 한데 유일한 고객인 줄 알았으나 먼저 수영장에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시리아 난민 가족이었다. 그들은 수영장과 해변을 오가며 즐기고 먹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메카를 향해 절을 했다.

앞서 취재팀이 레스보스 공항에 내렸을 때도 그리스 국내선을 이용하려는 시리아 ‘귀족 난민’들로 대합실이 북새통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비치던 난민 참상과 다른 귀족 난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터키 해안에 떠내려온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과 대조되는 불가해한 현실이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에서 난민 구제 사역을 하는 김수길 그리스 선교사가 기저귀 등 구제 물품을 나눠줄 때 어떤 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행색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 귀족 난민의 남자는 차도르를 한 자신의 여인들에게 동양인이 눈길을 주는 것조차 혐오스러워했다. 시리아 난민 가운데 이 같은 귀족 난민이 많았다. 귀족 난민 대개는 시리아의 중산층 이상이거나 그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반면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빈국 난민은 전 노정을 오로지 걸어서 이동하고 노숙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귀족 난민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관대한 난민 정책을 발표한 이후 급증했다. 김 선교사는 “선진국 독일에서 시리아 사람이라면 신분, 교육 정도, 경제적 지위, 종교 유무 등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고 정착금까지 주겠다고 하니 탈출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더구나 독일은 교육비도 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시리아인에게 ‘국가의 위기가 개인의 축복’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 위기 상황이 왔다고 가정하고 만약 미국이 우리에게 이 같은 조건을 내건다면 우리 또한 조국을 등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슬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곤경에 처한 사마리아인’을 위해 손을 내민다”는 김 선교사가 ‘유럽 난민 사태’에 대한 18년 선교활동의 체험적 분석을 내놨다. “유럽 난민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내려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하나님을 잊고 사는 유럽인을 향한 징벌적 경고가 아닌가 싶다”며 “국가가 주도하는 관료화된 유럽 교회들이 무슬림을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전무했던 것도 정신사적 난민 쇼크를 맞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유럽의 영국 성공회, 독일 국교회 루트란 아워, 그리스 및 러시아 정교회, 유럽 가톨릭 등은 이슬람의 범유럽화운동에 속수무책인 상태다. 2006년 유럽연합(EU) 기준 1500만∼2300만명이 무슬림이다. 그 사이 국가를 등진 무슬림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들의 신을 결코 등지지 않고 북상을 계속하고 있다. 무서운 얘기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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