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명품마을을 가다-물꽃마을 박석윤 창문아트센터 관장] “더불어 천천히 가는 길이…” 기사의 사진
“그림을 하는 사람이 뭘 아나요. 농촌마을을 단순하게 생각했다가 고생 많이 했죠. 마을 만들기 코디네이터 교육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말 공부 많이 했습니다.”

박석윤(56·사진) 창문아트센터 관장은 2000년 초 미술작가로서 좋은 작업실을 찾아 이곳에 왔다가 물꽃마을을 예술농촌체험마을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선봉장으로 나서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전혀 다른 뜻이 없었고, 단지 뜻이 맞는 작가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 9명의 작가 중 첨병으로 이곳에 왔다”고 했다.

박 관장은 작가로서 미술작업을 하며 근처 협성대에서 강의를 했다. 가끔 마지못해 행정 서류작업을 도와주며 주민들과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교육청에서 ‘작업실을 비워 달라’고 할 때 주민들이 나서서 해결해주면서 박 관장의 상황도 확 변했다.

박 관장은 “교육청에서 초창기 두 번에 걸쳐 ‘학교를 비워 달라’고 해 작가들이 불안해했고, 이때 일부 작가들이 떠났다”며 “주민들이 ‘학교가 새롭게 들어서지 않는 한 예술작가들을 건들지 마라’고 교육청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시위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켜줬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고마운 주민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고, ‘주말농장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그는 “처음엔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정체성 혼란까지 왔다”며 “그러나 ‘함께 더불어 살며 천천히 가는 길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회고했다.

박 관장은 35세부터 대학 강단에 섰으나 지금은 아예 끊었다. 대신에 작업실에서 미술작업과 마을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갖가지 마을 사업에 대한 기획은 물론이고 세부적인 조율에 이르기까지 관장하면서 삶 자체가 바뀐 것이다.

주민들은 창문아트센터 내 12평 남짓한 관사에서 생활하는 박 관장 가족을 위해 쌀, 고구마, 채소 등 먹을거리를 담 너머로 놓고 간다.

박 관장은 “계절마다 수확하는 농산물을 주민들이 남몰래 준다. 누가 주는지 대충 안다. 더불어 살다보면 자꾸 식구처럼 서로 다가간다”고 말했다.화성=강희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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