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문화자존심 보여준 부산국제영화제 기사의 사진
지난 10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는 별다른 관심 속에서 치러진 행사였다. 지난해 ‘다이빙 벨’ 상영을 놓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마찰을 빚은 이후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사퇴 압력을 받았고, 부산시와 감사원의 특별 감사를 받아 영화제가 제대로 굴러갈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예산 14억6000만원에서 6억6000만원이 삭감되는 시련까지 겪었다. 이 정도 되면 행사가 빛을 잃는 것은 ‘문화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고질이다. 미술제에서는 야심적으로 기획했던 그림이 내려가고, 영화제에서는 1년 내내 전문가들이 애써 고른 작품들이 뒤죽박죽된다.

더구나 날씨까지 영화제 편이 아니었다. 개막일이던 1일에는 태풍까지 가세해 낮부터 서울발 부산행 비행기가 한 편도 뜨지 못했다. 저녁 6시에 시작되는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후 2∼3시 비행기를 예약한 초청 인사들은 누구도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오후 5시쯤 부산 영화의전당에 초청 인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영화제가 시작될 무렵에는 야외극장 4000석이 꽉 들어차는 이변이 일어났다.

심야에 열린 리셉션에서 사람들은 “이것이 부산영화제의 자부심”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공항에 갔더니 비행기가 전편 운항 취소된 것을 알고 발길을 돌리려고 했단다. 그러나 영화를 빼라, 집행위원장 바꿔라, 감사를 실시해라 하고 1년 내내 생짜배기로 나오는 당국에 문화자존심을 보여주기 위해 카풀을 하거나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상영작 선정은 영화제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 프로그래머들이 세계의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하기 위해 1년 내내 해외 동향을 파악하며 수백편의 영화를 선정한다. 그리고 영화제에 독특한 색깔을 입힌다. 칸영화제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싹쓸이 초청하다시피 해 연일 파티를 연다. 베를린영화제는 미디어들이 혹할 만큼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거나 화끈한 가십을 뿌리는 영화에 손을 뻗친다. 베니스영화제는 예술영화제를 지향하면서 제삼국 감독을 발굴하는 데 힘을 쏟는다. 이들 3대 영화제 바로 뒤에서 부산, 뉴욕, 몬트리올, 로카르노 등 신흥 영화제들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런 문화 전쟁 속에서 정부는 내려라 올려라, 나가라 들어가라 할 자격도 안목도 없다. 그건 60년 전 서양에서 실패하고 사라진 역사다. 1946년 시작된 칸영화제는 1948년과 1950년 두 차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장 임명에 정부가 관여하자 영화인들이 영화제를 취소시킨 역사를 갖고 있다.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나라(도시)는 간섭하지 않는 아량 정도는 가져야 한다.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이 노골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판한 ‘화씨 9/11’을 만들어 200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내려라 올려라’ 하지 않았다.

좋은 영화는 엔딩 타이틀과 함께 수백명의 이름이 올라갈 때 강렬한 감동을 남긴다. 하나의 영화제는 더 많은 사람의 이름이 필요하다. 도움을 준 국내외 영화사들, 대사관들, 예술연구소들, 영화아카데미, 각 대학과 출판사들, 포럼과 필름마켓들, 동서양의 스타들, 300편이 넘는 초청작들, 파티들, 600여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 그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하며 영화제는 세계를 건너간다. 누구도 그 흐름을 흩뜨리면 안 된다. 정치 승리를 위해서는 역사 교과서를 포함한 어떤 갈등도 만들 수 있는 독기를 가진 권력자들에게는 양보와 소통, 화해의 정신이 필요하다. 간섭하지 말고 영화를 보라. 누군가의 창의력을 본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공부임에 틀림없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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