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언어는 우리 힘… 엄마·아빠나라 잇는 징검다리 될래요” 기사의 사진
이은하(오른쪽)·유하 자매가 11일 서울 광진구의 집 근처 공원에서 그네에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자매는 맞잡은 손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나라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서영희 기자
이은하(가명·16)양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은하의 마음 한구석엔 늘 아빠의 모국어인 일본어를 영어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배우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빠와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자주 일본 TV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일본어를 ‘나만의 강점’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동생 유하(가명·14·여)도 그랬다. 매년 여름방학마다 일본 오카야마현의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나러 가서도 사랑과 감사를 일본어로 표현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빠가 구해다준 일본 교과서로 독학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런 자매에게 디딤돌이 생겼다. LG 다문화학교 ‘언어인재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어와도, ‘다문화 자녀’라는 자신의 정체성과도 부쩍 가까워졌다.

우리는 ‘양손잡이’

계기를 만들어 준 건 은하와 두 살 터울인 오빠였다. 그가 재학 중이던 중학교에서 LG 다문화학교 언어인재과정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은하에게 전했다. 은하는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2012년 2기 학생으로 선발됐다.

은하는 2년 동안 다양한 배경의 다문화학생들과 함께 한국외대에서 일본어·일본문화를 공부하고 캠프를 즐겼다. 1주일에 두 번은 일본어 화상수업을 들었다. 알게 모르게 체득한 기본기에 탄력이 붙자 일본어 실력은 금세 늘었다.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와중에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따기도 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소설을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됐다. 은하는 “한글로 읽을 때와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도 읽을 계획”이라고 했다. 각자의 두 번째 모국어로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일본어 대표’로 뽑혀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엔 서울의 한 외국어고 일본어과에 합격했다.

유하는 언니가 언어인재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의지를 키웠다. 지난해 3기 학생으로 선발돼 올 연말까지 공부를 이어간다. 유하는 무엇보다 일본어 실력을 갈고닦아 일본에 계신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는 게 자랑스럽다. 그는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일본어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구나. 편지 보내줘서 고맙고 기쁘다’고 해주셔서 행복했다”며 웃었다. JLPT 2급을 취득하며 향상된 실력도 확인했다.

유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일본 해외연수를 꼽았다. 오전에는 일본 대학교에서 다도와 일본 가정집 방문 예절을 배우고, 이를 오후에 직접 체험하는 식이었다. 은하는 백일장이 기억에 남는다. 은하는 LG 다문화학교에서 만난 친구, 선생님과의 추억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쓴 시에 담았다. 백일장 참가자들이 쓴 시들은 ‘우리는 양손잡이’란 제목의 시집에 한데 엮였다.

다문화 자긍심도 ‘쑥쑥’

자매는 언어인재과정을 통해 다문화의 장점을 파악하고 계발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은하는 “처음에는 같은 처지의 다문화 친구들을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이 돼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이런 걱정은 친구들과 멘토 선생님을 만나며 누그러졌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는 ‘우리 집은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을 당당히 꺼내기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긍심이 생겼다고 한다. 언어뿐 아니라 협력, 책임감, 리더십 등 중요한 가치를 배우는 기회도 됐다.

자매는 어머니 아버지의 다양한 배경과 환경만큼 제각각인 친구들이었지만 다문화가정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공감대가 컸다고 했다. 은하는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주변 친구들이 무심하게 던지는 얘기에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는데 언어인재과정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람직한 자세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모 중 한 분이 일본인인데도 한국어로만 말하고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다문화가정 친구도 있었다. 유하는 “같은 다문화 학생이라도 사정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서로의 언어에 유창하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 사이에 징검다리가 돼 소통을 돕게 된 친구들을 보니 기뻤다”고 전했다.

은하는 일본 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도쿄대에서 유학하는 게 목표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국제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유하는 JLPT 1급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그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일본어로 막힘없이 읽고 싶다. 일본에 한국 소식을 전하거나 한국에 일본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 특파원이 꿈”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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