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분단 극복을…” 독일교회, 한반도 통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제4부) 통일코리아를 향해 - <1> 獨 라이프치히 (上) 평화통일 비전을 품다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분단 극복을…” 독일교회, 한반도 통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사의 사진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됐던 라이프치히의 성니콜라이교회와 평화타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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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그동안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 성경적 정신에 입각해 남북 화해와 평화를 도모하며 다각도로 대북 지원에 나섰다. 이제 광복 70주년을 보내면서 실제적 통일을 이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4부에서는 '통일코리아'를 향한 구체적인 비전을 11회에 걸쳐 제시한다. 통일을 이룬 독일 사례를 시작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과 한인 네트워크 활용 등의 필요성을 짚어보고 통일 한국을 향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살펴본다.

3단 원형 모양의 십자가 촛대 위의 초들에 불이 켜졌다. 40개의 작은 초들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예배당 중앙 통로의 한가운데서 큰 불꽃이 됐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불붙은 떨기나무 같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하며 금방이라도 말씀이 울릴 것 같았다.

“땡∼땡∼땡∼.”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조금 전까지 관광객으로 웅성거렸던 예배당은 12번의 종소리가 끝나자 정적에 휩싸였다. 이날은 기도회가 열리는 날. 목회자가 순서지를 배포했다. 순서지의 표지는 철못으로 만든 십자가 사진이었다.

참석한 신자들은 20여명. 목회자는 로마서 3장 23절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를 읽었고, 신자들은 7가지 기도문을 낭독했다. 속죄를 위한 기도였다. ‘미움과 증오로 국가와 국가, 인종과 인종, 계층과 계층이 분열되는 것을 용서하소서.’ ‘피조세계를 파괴하는 탐욕을 용서하소서.’ ‘난민과 수감자, 집 없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하나님 대신 자신을 신뢰한 것을 용서하소서.’….

지난달 18일 독일 라이프치히 성니콜라이교회 정오기도회. 독일 통일의 전초가 됐던 월요 평화기도회의 불꽃은 이렇게 매주 금요일마다 타올랐다. 통일된 지 25년이 지났어도 교회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전 세계를 위한 화해와 용서를 위한 탄원이었다. 금요 기도회는 일명 ‘못십자가 기도회’로 불렸다.

교회 입구에는 교회를 소개하는 한글 브로셔가 비치돼 있었다. 파레르 퓌러(Pfarrer C F몕hrer) 담임목사는 “평화를 위한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니콜라이교회에 실업문제 대책 이니셔티브가 생겼다. 교회는 이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집, 희망의 집, 피난처와 출발의 장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니콜라이교회는 주일마다 4회 예배를 드리며 그 중 1회는 한국인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성니콜라이교회는 1165년 설립됐다. 1539년 종교개혁의 물결이 휩쓸면서 개혁교회(루터교회)로 변했고, 1723∼1750년에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교회 지휘자로 활동했다. 성니콜라이교회가 평화 기도에 나선 것은 80년대 초부터다. 당시 서독에선 군비증강 반대 데모가 일어났고 동독 라이프치히에서는 평화를 위한 집회가 열렸다. 기독 젊은이들은 이때 기도하기 위해 교회에 모였고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기도회를 가졌다.

기도회에서는 구약 예언서와 신약의 산상수훈을 토대로 시국에 맞춰 메시지가 전해졌고 교회에 모인 젊은이들은 토론과 숙고,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에 매달렸다. 동독 정부는 이를 불온하게 여겼고 경찰은 교회 주변을 포위했다. 이때 참가자들이 체포되면서 낮에는 교회 창문에 꽃이 장식됐고 밤에는 촛불이 켜졌다. 촛불은 시위를 위한 신호탄이었다. 89년 9월 11일 운동가들이 ‘새로운 광장’이란 단체를 조직하면서 비폭력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다.

지금의 성니콜라이교회 밖 광장에는 통일 후 평화 기도회와 시위를 기념해 제작한 평화타워가 세워져 있다. 예배당 안의 기둥 하나를 떼어놓은 것과 흡사한 모양의 20m 높이 기둥탑이었다. 탑 옆의 바닥에는 가로 50㎝, 세로 30㎝ 크기의 동판이 설치돼 있다. 동판에는 89년 10월 9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수십 개의 발자국 문양이 찍혀 있었다. 남자 구두와 여자 구두, 아이 신발, 운동화와 슬리퍼였다. 10월 9일은 2000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두 손에 들고 찬송을 부르며 기도한 날이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평화타워와 동판을 살폈다. ‘독일통일’은 이렇게 전 세계에 기억되고 있었다.

기도회를 마치고 나온 신자 한스(55)씨를 만났다. 그는 “한국이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독일교회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타워를 가리키며 “기도하고 행동하면 통일을 이룰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라이프치히=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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