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내가 믿으면 진실? 기사의 사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배치되는 정보는 제거하고 부합하는 정보만 찾는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수에겐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만, 진보에겐 ‘반민주’만 보이고 들리는지 모르겠다. 미국 터프츠대 심리학자 레이먼드 니커슨은 “확증편향은 침투력이 매우 강해 개인과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논쟁과 오해, 갈등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지적했다.

몇 해 전 힙합가수 타블로가 학력위조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몇몇 누리꾼들이 SNS에 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그의 학력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순식간에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지고 20여만명이 카페에 가입, 마녀사냥에 가세했다. 타블로가 졸업장을 공개하고, 대학 측이 거듭 사실 확인을 해줘도 이들은 믿지 않았다. 결국 검찰이 나서 형사처벌하고 나서야 논란이 잠잠해졌고, 그때서야 비로소 잘못을 시인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애초부터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무엇이 진실이든 그냥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게 진실이라고 믿어버린 거다.

차남 병역문제로 집요한 공격을 받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비슷한 경우다. 2011년 9월 공군 현역병으로 입대한 박 시장 아들은 허리통증으로 입대 나흘 만에 귀가조치됐다. 그리고 3개월 후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 시장 측이 MRI 필름을 바꿔치기해 아들의 신체등급을 조작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박 시장 측은 이중삼중의 검증절차를 밟았다. 아들이 취재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았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보증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 경찰에서도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고, 병무청 역시 “비리는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런데도 일부 보수단체들은 수긍하기는커녕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지만 최고 권위의 병원과 검·경, 병무청의 일치된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면 대체 어느 병원, 어느 기관에서 검사하고 조사해야 받아들일 건지 그것이 궁금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태어난 기독교도다. 그러나 중간 이름 ‘후세인’ 때문에 2008년 대선 당시 극우파로부터 아랍인이라는 공격에 시달렸다. 하와이주가 발급한 출생증명서도 소용없었다. 이때 단호하게 “아니다”고 나선 이가 오바마의 경쟁자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였다. 매케인은 공화당 행사에서 한 지지자가 “오바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 비난을 퍼붓자 그의 마이크를 빼앗으며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가장이고 시민이다. 나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다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게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포용의 정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졸지에 공산주의자가 됐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종북 척결에 앞장섰던 그는 진작 숙청됐어야 했다. 오죽하면 보수 성향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조차 그의 주장을 “상당히 과도하다”고 면박했나 싶다.

천지가 개벽할 때 살았다는 괴물이 있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한다. 그저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할 뿐 결코 앞으로 나아가는 일도 없다. 이 괴물이 혼돈이다. 봐야 할 걸 보지 않고, 들어야 할 걸 듣지 않으니 혼돈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동전의 뒷면이 없는 게 아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