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상진] 역사전쟁과 ‘헬조선’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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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가진 자들이 결심해선 안 된다. 전쟁에서 죽는 것은 오직 가지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늙은 자들이 결정해선 안 된다. 전쟁에서 죽는 것은 단지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TV에서 본 사극 한 편이 흥미로웠다. 과거 다른 사극에서 이순신 장군을 인상 깊게 연기했던 배우 김명민씨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주목한 건 정도전 역을 맡은 그의 메시지였다. 조선 건국시기를 무대로 삼는 SBS 역사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은 고려 말 권력층인 친원파에게 정면으로 맞선다. 원과 수교를 맺는 순간 신흥세력인 명과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본 그는 열변을 토해낸다. 메시지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전쟁에 숨겨진 얼굴을 들춰낸다.

정도전은 결정권이 없는 이들의 아픔에 대해 말한다. 무자비한 전쟁으로 발생한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문제 삼는다. 기득권이라곤 없는 서민, 나라의 미래인 젊은이들은 전쟁을 하겠다고 결정한 적도 없지만 전쟁이 터진 순간부터 그 무게를 오롯이 떠안는다. 전쟁은 정규군끼리의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민간인들의 희생을 요구하며, 모든 자원을 무차별 동원한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한 뒤로 한국사회는 ‘역사전쟁’에 돌입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대립 구도는 익숙하다. 대한민국의 시작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한 1948년인지부터 논란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산업화에 대한 평가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놓고도 충돌이 벌어진다. 공로와 과오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서술 역시 논란거리다. 거대한 블랙홀이 만들어졌고, 이 사회의 자원을 서서히 빨아들이고 있다.

물론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계승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그것도 평탄한 길이 아니라 온갖 굴곡과 영광을 동시에 맛본 우리네 역사라면 더욱 그렇다. 파란만장했던 과거에서 지혜를 추출해 청소년에게 전달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역사를 평가하는 작업은 논쟁과 토론이 가능한 원탁에서가 아니라 전투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총력전을 예고하고 있고, 거리엔 날 선 이념을 내세운 현수막이 붙었다. 국민들이 받은 건 초대장이 아니라 동원령에 따른 소집통지서에 가깝다. 초대장은 정중한 문구와 친절한 설명으로 장식되지만 소집통지서엔 근거조항과 일정만 투박하게 나열돼 있다. 블랙홀이 커질수록 동원되는 자원은 말라간다. 정치인들은 동원된 자원을 이용해 활기가 넘치지만 국민들은 진이 빠진다.

역사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피해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진다. 앞으로 교과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지금까지 배웠던 한국사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자주 바뀌는 입시와 각종 시험을 치르며 스스로를 ‘모르모트(실험쥐) 세대’로 지칭했던 그들의 선배들처럼.

정해진 틀 안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사회. 이미 답이 정해진 채 인생에서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2030세대에게 ‘헬조선’(지옥이라는 뜻의 ‘hell’과 한국사회를 의미하는 ‘조선’의 합성어)이란 말로 등장했다.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1990년대 초중반 청년들은 ‘X세대’로 불렸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에다 종잡을 수 없다는 부정적 의미도 있었지만 가능성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활동이 늘면서 청년들은 인터넷에서의 소통을 의미하는 ‘N세대’로 진화했다. 하지만 2015년 한국의 2030세대를 지칭하려면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첫 포기의 대상은 연애·결혼·출산이었다. 그러다 인간관계와 내 집을 포기했고, 시간이 흐르자 꿈과 희망마저 포기 목록에 추가했다. N세대는 ‘N포 세대’(모든 것을 무한대로 포기한 세대)가 됐다.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균형 잡힌 역사해석이 우리 사회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밑거름이 될 거라는 설명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역사를 강물에 비유해 ‘흐른다’고 표현하는 건 축적된 역사적 자양분이 미래세대에게 도달한다는 희망이 있어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사회의 유례없는 성과가 현재 청년들에게도 연결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양분들은 물줄기가 말라버린 중간 어느 지점에서 막혀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사 교과서를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지향점에 두고 서로가 참호를 깊게 파는 것만 고집한다면 그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백상진 경제부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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