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십자가와 단풍 기사의 사진
가을은 만인이 좋아하는 계절이다. 열흘 정도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을 보는 재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텁텁하던 한여름의 공기가 물러간 뒤 상쾌한 가을 공기를 맞으며 바라보는 단풍은 즐거움과 아쉬움, 약간의 긴장과 고독한 기쁨을 준다. 그래서 가을을 기다린다.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단풍이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달 초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오대산 태백산 북한산 월악산 속리산을 지나 소백산을 넘어 지리산 내장산으로 달리고 있다. 이번 주말은 수렴동 계곡, 만물상 등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붉게 물든 단풍에 취해 사람들의 마음마저 붉게 물드는 가을의 향연이 펼쳐진다. 실로 하나님이 만드신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단풍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고통의 과정에서 나온 결실이다. 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새봄에 새잎을 틔우기 위해 낡은 잎의 옷을 벗는다. 그 과정에서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붉게 물드는 게 단풍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환호하지만 나무는 버리고 비우면서 새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버렸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가 달린 십자가는 예수의 피로 붉게 물들고, 그 모습을 로마군인들과 유대인 대중은 환호하며 즐겼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다음 겨울을 맞는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생명의 피를 다 쏟아내고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달려 있었다. 단풍을 보며 환호하는 대중의 즐거움이 가을에 만나는 일상이라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소리 지르던 대중의 모습은 죄로 물든 인간의 무지를 드러낸다.

이 가을에 사람들은 보는 즐거움에 환호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사랑에 환호해야 한다. 나무가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이 입고 있는 낡은 잎을 버리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붉게 물든 그리스도인들은 낡은 구습을 버리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야 한다. 비우고 버려야만 새로움이 채워지는 놀라운 이치가 여의도공원을 물들이기 시작한 단풍을 보며 느낀 깨달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상 속에서 매일 예수의 보혈로 옷을 입어야 한다. 예수 피로 채색되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예수의 광채를 받으면 그 빛을 반사할 수 있기에 우리는 매일 나를 죽이고 비워가는 기도수련을 해야 한다. 나뭇잎이 떨어져 썩으면 나무에 영양분으로 공급되듯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받은 새 생명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고귀한 연습을 매일 일상에서 해야 한다.

영국의 차세대 복음주의 저술가로 잘 알려진 팀 체스터는 저서 ‘일상영웅’에서 “예수님이 피 흘려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준 십자가는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위대한 선언”이라고 했다. 그는 모두가 자기 자신이 되고 자신을 표현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당위인 시대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일상 영웅들의 삶이라고 설명했다. 십자가를 따르는 길, 그 길은 비우고 나누고 낮아져야 하는 헌신과 희생의 길이지만 예수 피로 붉게 물든 작은 영웅들이 만들어 내는 천국행 페이브먼트다.

한국교회는 길을 잃었다고 한다. 성도들도 길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십자가를 사랑하는 작은 영웅들의 일상이 이어지는 한 교회는 살고 부흥하며 성도의 길은 즐거움과 희락의 길이 된다. 긍정의 누룩은 새 역사를 창조하지만 부정의 누룩은 역사를 후퇴시킨다.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한 세례요한의 외침이 깊어가는 가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십자가의 도’로 살아나길 기대한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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