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리즈 Ⅱ] “뭘 좀 아는 애가 들어왔네” 선배가 웃었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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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성화된 직업교육은 독일 교육제도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대학은 선택일 뿐이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직업교육을 성실하게 받으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좀더 고급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대학의 필요한 학과에 진학한다. 독일 고교생이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가는 비율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대학 브랜드’로 능력을 평가받는 한국의 현실과 대비된다.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대입 레이스에 뛰어들고 학부모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교육부는 2010년 중등교육 경쟁력을 높이고 학벌 풍토를 없애려 독일을 벤치마킹해 마이스터고 제도를 도입했다.

마이스터고는 기업체가 학교 교육과정에 들어와 실무형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이다. 기업 임직원이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필요한 인재를 데려간다. 2013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산업 현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활약을 하고 있을까. 마이스터고 출신 취업자 3명을 만났다.



“뭘 좀 아는 애가 들어왔네”

박희진(21·여)씨는 카메라 모듈을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카메라에 고장은 없는지, 마모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프로그램이다. 2년 전 마이스터고인 구미전자공고를 졸업하기 전에 LG이노텍 취업이 확정됐다.

전자회로 설계를 전공한 그는 입학 때 이미 진로를 정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잖아요. 더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고 싶었어요.”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는 회로에 마음이 끌렸고, 전자회로 설계 동아리에서 주말을 반납하며 회로에 빠져 살았다. 학교에는 월 10여만원 식비만 냈다. 수업료·기숙사비 등은 정부가 지원한다.

회로를 설계하는 툴을 다룰 수 있어 회사 적응도 빨랐다. 직원들도 ‘뭘 좀 아는 애가 들어왔다’며 반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카메라 점검 소프트웨어라는 특수 분야를 맡다보니 학교에서 배운 일반적인 전자회로와는 다른 공부가 필요했다.

박씨는 야간대학에 진학키로 했다. 마이스터고의 선취업·후진학 제도는 졸업 후 3년간 일한 학생에게 대학 등록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8월 한양대와 금오공대에 원서를 냈다. 박씨는 “결혼과 육아도 중요하지만 우선 능력 있는 실무자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기초학문을 좀더 가르쳤으면”

지난 2월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공사 이천지사에 재직 중인 안재윤(20)씨는 고압 계량기 유지·보수를 맡고 있다. 위험한 전문 작업이지만 척척 해낸다. 마이스터고에서 배운 실무 지식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안씨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마이스터고를 택했다. 학비 전액 지원 등의 혜택에 마음을 굳혔다. ‘공고’ 이미지 때문에 반대하던 부모님께 학교 홍보자료를 보여주며 설득해 입학했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재밌게 배웠던 전기의 흐름을 떠올린 안씨는 1학년을 마친 뒤 전기과에 지원했다.

학교에서 배운 전기 기기와 전력설비 관련 지식이 취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안씨는 “예를 들어 학교에서 배운 전신주의 원리와 구조 등을 취업 후 써먹고 있다”고 했다. 전신주에 직접 올라가거나 공구를 이용해 짧은 전선 2개를 연결하는 것도 학교에서 해본 작업들이다.

안씨는 마이스터고가 전문기술뿐 아니라 학생들의 사회성과 인성을 키워줬다고 평가한다. 대부분 팀 프로젝트로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의견이 갈릴 때 어떻게 갈등을 줄이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 배운다는 것이다. 의견을 조율하는 사회생활을 미리 경험해본 셈이다.

마이스터고에 쓴소리도 했다. 그는 “수학 교육이 너무 약하다”며 “인터넷 강의로 미분·적분 등을 공부하고 있다. 학년이 높아지면 전공 관련 실무지식 중심의 수업이 이뤄져 기초학문을 배울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꿈을 일찍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강수(20)씨가 마이스터고를 택한 건 친형 때문이었다. 입시 스트레스를 받던 형을 보면서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씨는 동아마이스터고에 입학해 자동화 시스템을 배웠다. 버스 자동문 등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시스템에 매료돼서다. 자동화 시스템을 확대하면 더 편리한 생활을 제공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씨는 지난 2월 졸업 후 외국계 의료기기 제조 회사에 취업했다. 혈액·소변을 통해 병이 있는지 자동으로 진단하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다. 지금은 병원 등에 찾아가 사용자 의견을 수렴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고 있다. 최종 목표는 의료 분야 자동화 설비에 특화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와 기업에서 배운 것만으론 어려웠다.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교육과 의료기기에 특화된 자동화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독일어·영어 수업을 받고 있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또래보다 10년 일찍 꿈을 구체화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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