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창준] 우리는 왜 노벨상이 없나 기사의 사진
전 세계 최고 영예로 꼽히는 노벨상은 지금까지 50개 나라에 790개가 수여됐다. 아시아를 보면 일본은 21개, 중국은 5개, 심지어 1인당 국민소득이 1600달러에 불과한 인도도 7개를 수상했다. 특히 미국은 전체 노벨상의 40%에 해당하는 320개를 받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평화상을 제외하면 학술 분야에서는 단 한 개의 노벨상도 타지 못했다. 경제 강국인 우리가 노벨상 수상이 하나도 없다는 건 창피스러운 일이다. 왜 그럴까?

각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이렇다. 첫 번째, 정부가 편성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주장이다. R&D 예산 총액은 미국이 가장 많고 다음이 중국이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한국이 단연 많다. 우리는 R&D에 쓰는 예산이 GDP의 4%를 넘어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히려 우리의 R&D 예산 비중은 미국보다 거의 배나 많다. 그러니 이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난다고 하겠다.

두 번째, 정부 정책이 창의적인 연구를 방해해 왔다는 주장이다. 노벨상을 타려면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연구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안전하고 실패율이 낮은 연구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예산 편성 때마다 성과만 재촉하고, 실제로 3년 정도 안에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회 국정감사 때 질타를 받게 되고 연구비가 중단된다고 하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세 번째, R&D 예산을 편성할 때 연구과제를 객관적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인맥 등이 더 중요하게 작용되는 게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역시 일부 맞는 얘기지만 교수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페터 그륀베르크는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를 즐기고 관심을 갖고 몰두하느냐가 노벨상 수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과연 우리 교수들이 연구에만 관심을 갖고 몰두하는지 의심이 간다.

한국에선 폴리페서(polifessor)란 단어가 잘 알려져 있다.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를 결합한 이 단어는 수업이나 학문 연구는 뒷전인 채 정치판에 관심 있는 교수를 의미한다. 대학교수들이 이처럼 본업을 외면하면 텅 빈 학교와 학문 발전은 어쩌나.

우리도 미국처럼 대학을 떠날 때는 깨끗이 사표를 내고 후배 강사들에게 교수의 기회를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많은 폴리페서들은 이미 대학에서 후세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약해진 사람들이다. 그러니 정치판에서 일이 잘 안되면 다시 캠퍼스로 돌아갈 수 있는, 양다리를 걸치는 현 제도는 옳지 않다. 정치판에 몸을 담으려면 적어도 안철수 의원처럼 비장한 각오로 ‘돌아갈 다리를 불태웠다’며 서울대 교수직에 사표를 던지는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전문성 있는 교수에게 대통령이 행정부 요직을 제안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많은 교수들은 이를 거절한다. 이들은 대개 교육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회의 존경받는 인물로, 열심히 연구에만 몰두하다 보니 노벨상을 타게 되는 것이다. 질 좋은 교육을 위해 헌신하면서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교수들의 사례는 미국 대학에서 흔한 일이다. 이래서 노벨상도 미국 교수들이 거의 반을 갖고 가는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학문보다 정치나 돈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노벨상은 요원한 일이다. 폴리페서가 판치는 한국 대학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 20년 안에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어쩐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김창준 前 미국연방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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