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한·중·일·영 4개언어 능통… ICT 전문가 될래요 기사의 사진
이운영군이 18일 서울 은평구 집 근처 공원에 앉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군은 LG 다문화학교 과학인재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ICT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지훈 기자
LG 다문화학교 과학인재과정서 꿈 키우는 이운영

‘움직이지 않고도 어떻게 모습이 변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이운영(15)군은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아버지가 일하는 출판사의 과학 시리즈물을 접하며 우주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 분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집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보면서 머릿속에 우주를 그려보는 게 취미가 됐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우주생물학’ 강의를 듣고는 우주생물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중학교에서 ‘우주소년단’ 동아리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천체망원경 조립과 조작 등을 독학해 동아리 친구들에게 직접 가르쳤다. 이런 운영이는 여느 ‘과학소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조금 특별했다.

일본 유학 도중 만난 한국인 아버지와 대만 출신 어머니가 운영이를 대만에서 낳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운영이는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능통하다. 담임선생님은 과학에 열심인 운영이를 눈여겨보다 LG 다문화학교 과학인재과정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한 달에 한 번 ‘꿈으로 가는 길’

운영이는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대전캠퍼스를 혼자 찾아간다. 중국 일본 미국 등 부모의 출신 국가가 다양한 다문화학생 8명과 함께 중학교 2·3학년에 해당하는 ‘레벨3 수업’을 듣는다. 토요일엔 특정 원리를 이론으로 배우고 팀원들과 함께 주어진 주제에 관해 발표하고 토론한다. 이튿날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이 있다. 컴퓨터 메인보드의 단순 버전인 ‘아두이노’(단일 보드형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활용한다. 그동안 프로그래밍을 통해 전자측우기, 미니선풍기, 전자악기 등 다양한 기계도 만들었다.

운영이는 특히 아두이노에 공기 중 진동을 감지하는 ‘피에조 센서’를 달아 만든 전자악기 ‘테레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손을 대지 않아도 초음파 센서가 공기 중 진동을 감지해 아두이노에 전송하면 관악기처럼 반응하는 악기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은 운영이의 진로를 우주생물학에서 정보통신기술(ICT)로 돌려놓았다. 그렇다고 천체물리학과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진학해 복수전공으로 물리학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선배’들이 멘토로 도움을 주고 있다. 운영이는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배우는 게 좋을까, 어떤 책을 보는 게 좋을까 물어보면 멘토들이 세세하게 설명해줘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운영이는 양자역학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물리학에 기초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물리엔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는 “양자역학이 우리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공이 날아가다 어느 지점에서 떨어지는지, 궤도 같은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함이라는 ‘다문화의 힘’

낯을 많이 가리던 운영이는 과학인재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덤으로 얻었다.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과 발표·토론을 거듭하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다. 학교에서는 오케스트라, 뮤지컬 동아리, 학생회 활동 등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과학인재과정을 거치면서 얻은 성장은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운영이는 지난해 ‘테레민’을 비롯한 여러 발명품을 가지고 ‘중국 상하이 국제청소년 과학엑스포’에 출전했다. 영어와 중국어로 발명품을 설명하면서 꿈은 한 뼘 더 자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 연속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메이커페어에도 참가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제품을 내놓는 이 행사에서 운영이와 친구들은 수업하면서 만든 발명품들을 선보였다. 운영이는 다음 달 있을 과학고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과학자라는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중이다.

운영이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특별한 ‘과학적 시선’이 있다고 믿는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비롯된 다양한 관점을 과학에 접목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과학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다양한 개발을 거듭한다. 팀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과정이 흥미롭다”며 밝게 웃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박세환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다문화가 경쟁력이다] 기사 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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