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알 모하메드 아가] “국제戰으로 변질된 조국… 알아사드 물러나야 평화” 기사의 사진
압둘 와합 알 모하메드 아가 ‘헬프시리아’ 기획국장은 진로에 고민이 많은 평범한 젊은이다. 오랜 내전으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한 조국 시리아의 비극적 상황이 그를 인권운동가로 만들었다. 최초의 시리아인 한국 유학생인 그는 “공부하러 한국에 왔는데 지금은 공부 반(半), 난민구호 활동 반 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4년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비극의 땅, 시리아. 내전이 지구전 양상을 띠면서 전체 국민 2300만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00만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시리아에 750만명, 터키 194만명, 레바논 112만명, 요르단 63만명이 수용돼 있다. 어렵게 유럽행에 성공한 난민도 부지기수다. 두 달 전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세계를 울린 세 살배기 에일란 쿠르디 역시 시리아 난민이다.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시리아 난민들이 처할 운명도 쿠르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들을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시리아인이 있다. 압둘 와합 알 모하메드 아가(31) ‘헬프시리아’ 기획국장이다. 한국에 온 지 6년 된 그는 우리말이 매우 유창했다. 동국대 법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를 지난 12일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헬프시리아 사무실에서 인터뷰하자는 뜻을 전했으나 그는 “그럴 형편이 안 돼 사무실이 없다”고 멋쩍어했다.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나.

“아랍어 공부하러 시리아에 온 한국인 친구들을 알게 돼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고,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인 친구들이 공부를 끝내고 귀국해 섭섭했었는데 그 친구들이 농담 반 진담 반 한국에 오라고 했다. 처음엔 으레 하는 인사인 줄 알았는데 친구뿐 아니라 교수들도 도움을 주겠다고 해서 2년간 준비했던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고 2009년 한국에 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친구 따라 강남 온 거다.(웃음)”

-‘헬프시리아’는 어떤 단체인가.

“시리아 상황이 어렵다. 난민을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노력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외국에 있는 난민보다 시리아 국내에 있는 난민이 훨씬 많고 어려운데, 국제기구는 시리아 안으로 못 들어간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서 시리아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2013년 6월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은 크게 후원금 모금과 시리아 홍보 활동 두 가지로 나뉜다. 헬프시리아 내에 청소년들이 모이는 작은 모임, ‘시리아의 창(window of Syria)’도 있다. 젊은이들이 모여 시리아에 대해 공부하고 아랍어와 시리아 문화·요리 등을 배우는 모임이다. 헬프시리아는 운영회원 8명, 일반회원 37명으로 구성돼 있다. 나 혼자 시리아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모금은 잘되나.

“잘 안 된다.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를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시리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 꾸준히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다.” (10월 15일 현재 후원금은 3083만7727원에 불과하다.)

-시리아 상황은 어떤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내전이 아니라 국제전이다. 시리아인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가 개입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아랍 연합국은 IS 반대편에 서 있고,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쿠바 이집트 알제리는 친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가족 소식은 듣고 있나.

“부모님과 동생 등 8명이 고향 라카(IS 수도)에 있다. 가족과는 간접 연락만 될 뿐 직접 연락할 수단은 없다. 지난해 브로커를 통해 터키에서 5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얼굴을 뵀다. 그리고 바로 밑 남동생(21)이 한 달여 전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어렵게 터키로 탈출했다. 동생은 성인이어서 라카에 있으면 IS에 강제 징집된다. 지지난주 터키에서 동생을 만나 얘길 들어보니 가족들은 힘들지만 무사하다고 한다. 비자를 받을 수만 있다면 동생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

-모든 가족이 탈출할 수는 없었나.

“일가족이 없어지면 고향 친척들이 IS에 화를 입는다.”

-IS 치하에서 가장 힘든 점은.

“모든 게 다 힘들다. 자유가 없다. IS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바로 참수된다. IS는 사생활까지 간섭한다. 여성스럽게 보인다고 남자에게 이발과 면도를 못 하게 해 고향 이발소들이 전부 문을 닫았단다. 여성의 경우 혼자서는 외출할 수 없다. 교육도 IS가 원하는 것만 가르친다.”

-터키 요르단 레바논 난민캠프를 돌아보고 왔는데.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상황이 가장 나은 터키 캠프는 터키 정부가 관리를 잘하고 있는 데다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하다. 그래도 감옥 같은 느낌이 든다.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8만명이 수용된 요르단 알자카리 캠프의 경우 50% 이상이 어린이다. 유엔을 통해 매달 1인당 19달러씩 카드로 지원금을 받는데 요르단 정부가 설치한 캠프 내 슈퍼마켓에서만 쓸 수 있다. 이 마켓의 물건값은 밖의 슈퍼보다 배 이상 비싸다. 요르단 정부가 난민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캠프는 사막에 있어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전기는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만 들어오고 냉장고나 선풍기도 없다. 캠프에 일자리가 없다 보니 관리자에게 뇌물을 주고 새벽에 몰래 밖으로 나가 일한 뒤 캠프로 돌아오는 난민도 많다.”

-난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은.

“부족하지 않은 게 없다. 모든 시리아 난민이 원하는 하나가 있다. 내전이 하루속히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내전만 끝나면 도움은 필요 없다. 시리아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자원도 풍부하다. 내전만 끝나면 난민 가운데 95% 이상이 귀국할 것이다. 그러면 국제사회도 난민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시리아 문제가 해결되도록 국제사회가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리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만 각국이 정치적 욕심을 내려놓고 임시로 난민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국내에도 시리아 난민이 있나.

“한국에는 750여명의 시리아인이 있다. 대부분 중고차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들 대부분이 한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는데 3명만 받아들여졌다. 나머지는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돼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개밖에 안 된다. 선택은 법을 지키면서 굶어 죽든가, 법을 위반해 먹고살든가 두 가지 중 하나다.”

-압둘 와합 국장이 생각하는 내전 해결책은.

“파샤르 알아사드 현 대통령이 빨리 물러나야 한다. 모든 문제가 알아사드 때문에 생겼다.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에 이어 부자가 45년 동안 독재하고 있다. 그래서 시리아 국민들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싶어 시위에 나선 것인데 국제전으로 변질됐다. 독재자가 없어지면 싸움의 원인도 사라진다. IS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독재가 무너지고 전 시리아인이 단결하면 IS를 물리칠 수 있다.”

-한국과 시리아는 외교관계가 없는데 한국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나.

“상당히 불편하다. 외교관계가 없어 대사관도 없다. 한국 기관에서 시리아 서류를 인정하지 않는 곳이 많다. 서류를 보내거나 받으려면 일본 주재 시리아대사관을 통해야 하는데 비용도 엄청나게 들고 기간 또한 많이 걸린다. 나는 한국정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음에도 미수교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다른 외국인과 달리 정부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국내 생활 6년 동안 느낀 한국의 가장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꼽는다면.

“의리를 중시하고, 애국심이 강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빨리빨리’ 문화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처음엔 따라 하기 무척 힘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로봇처럼 일만 하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언제까지 위로 올라가야만 하나. 이제는 속도를 조금 늦춰 한국인들이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가족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은 안타깝다. 국제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혼자 사는 게 아닌데 한국인들은 국제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진로는 정했나.

“그게 가장 큰 고민이다. 당초 박사 과정 마치면 시리아로 갈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귀국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사 과정 끝나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시리아 상황이 안정되면 바로 귀국할 생각이다. 시리아는 옛날보다 더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 같은 시리아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리아, 행복한 시리아, 자유로운 시리아를 세워야 한다. 시리아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앞으로의 바람은.

“시리아 상황이 빨리 끝나야 한다. 그래야 가족들도 빨리 볼 수 있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공부해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압둘 와합씨는 시리아를 탈출한 동생을 만나러 지난 15일 터키로 출국했다. 그는 터키에서도 SNS를 통해 난민 소식을 전하는 등 ‘헬프시리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알 모하메드 아가는…

시리아인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한국 유학생이다. 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시리아로 유학을 간 한국 학생과의 인연으로 2009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으며, 현재 동국대 법학대학원 박사 과정 4학기째다. 시리아 최고 명문 다마스쿠스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내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2013년 시리아에서 인연을 맺은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과 협조로 난민을 돕기 위한 구호단체 ‘헬프시리아’를 설립, 사무국장을 거쳐 기획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고향은 라카로, IS(이슬람국가)가 수도로 삼고 있는 곳이다. 그는 5남3녀의 장남으로 고향에는 얼마 전 터키로 탈출한 바로 밑 남동생(여동생을 포함하면 넷째)을 제외하고 부모와 여섯명의 동생이 IS 치하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아랍어 강의와 번역 등 파트타임 일거리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빠듯한 살림이지만 자신의 일보다 난민 돕는 일을 우선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보다 많은 한국인이 시리아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했다.

만난 사람=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