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아직 ‘한 국가 두 사회’ 모습 사회 통합 위한 영적 바람 기대

(제4부) 통일코리아를 향해 - <2> 獨 베를린 中 독일교회가 직면한 도전과 희망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아직 ‘한 국가 두 사회’ 모습 사회 통합 위한 영적 바람 기대 기사의 사진
독일교회는 통일 이후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최근 다음세대의 기독교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사진은 베를린 슈프레 강변에 위치한 루터교회인 베를린돔 모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지난달 15일 독일 수도 베를린 중심가인 알렉산더광장. 오전에 맑았던 날씨는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흐려졌다. 슈프레강이 흐르는 이곳은 전형적인 관광·상업 지구이다. 강변에서 동쪽 시가지를 바라보니 368m 높이의 TV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베를린 미테 지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하늘은 TV타워 뾰족한 탑의 언저리 부근에서 두 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파란 하늘과 먹구름이 물과 기름처럼 선명한 층을 이뤘다.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한 국가 두 사회'로 머물고 있는 독일의 현실 같았다.

◇베를린은 과거를 잊지 않는 곳=이날 슈프레강 동쪽 강변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청소년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견학 온 학생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DDR 박물관’. 옛 동독의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DDR’은 동독을 뜻하는 ‘Deutsche Democratic Republik’을 말한다.

이 박물관은 2006년 문을 연 이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 관람이 아니라 체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젊은 층에 인기가 많다고 한다. 옛 동독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동독 출신들도 많이 찾는다고 담당 큐레이터 로버트 바이어(55)씨가 전했다. 박물관 내부에는 당시 패션과 가정집 자동차 등 일상생활을 그대로 옮겨놨고, 베를린 장벽과 군대 내무반까지 전시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은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비’(트라반트의 애칭)를 타며 연신 떠들었다.

DDR 박물관은 살아 있는 역사책 같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르네(20·여)씨와 마리안느(20·여)씨는 통일 독일의 청년 세대이다. 르네씨는 “옛 동독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서 왔다”며 “부모님도 서독 출신이라 동독인들의 삶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르네씨는 “중·고등학교에서 DDR 박물관 견학을 필수 코스로 정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며 “이런 곳에 오지 않으면 동독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에는 ‘기억’의 장소가 많다. 포츠담광장은 알렉산더광장과 함께 베를린의 손꼽히는 번화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주요 표적이 되면서 완전히 파괴됐고 1961년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서로 나뉘었다. 통일 이후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베를린에서 가장 세련된 거리로 탈바꿈했다. 인근에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던 흔적이 돌길로 남아 있었고, 곳곳에 장벽의 조각들을 전시했다. 장벽의 돌길을 따라가면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을 만난다. 나치 관련 박물관으로 통일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모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사진과 문서들이 많았다. 이곳에도 외국 관광객을 비롯해 독일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통일 독일의 대표적 볼거리이다. 길이 1.3㎞에 달하는 장벽에는 자유와 희망, 평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과 그래피티가 전시돼 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인 ‘형제의 키스’ 앞에는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 작품은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의 입맞춤을 그린 것이다.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는 오베르바움 다리가 위용을 드러냈다. ‘화합의 다리’로 불리는 이 교량은 통일 전에는 동서를 구분하는 국경으로 보행자 전용으로 사용됐다가 지금은 ‘통일 대교’가 됐다. 보행자는 물론 차량과 지하철까지 교차하고 있을 정도로 넓고 크다.

◇통일 세대가 진정한 통합 이룰까=베를린이 과거를 기억하는 현장이라면 교회는 그 속에 머물러 있었다. 번화가 주변엔 여러 교회들이 있었다. 알렉산더광장 주위에 마리엔교회와 니콜라이교회가, DDR 박물관 바로 건너편엔 베를린 최대 개신교회인 베를린돔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에게 교회는 잊혀진 지 오래다. 베를린에 있는 몇몇 교회는 입장료를 받으며 ‘박물관화’ 되고 있었다. 베를린돔은 주일 오전·오후 예배를 드리며 주중에도 정오기도회를 개최했지만 웅장한 크기 탓인지 독일인조차 교회라는 것을 몰랐다. DDR 박물관에서 만난 마리안느씨는 “무슨 박물관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독일교회는 통일 이전에 생각했던 예측이 빗나갔다고 한다. 동·서독 교회가 상호 교류하며 도왔던 것처럼 통일 후 신앙적 붐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시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란 기대는 물 건너갔다. ‘이단종파조차 구 동독 지역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 게 벌써 오래 전이다.

현재 독일교회는 부흥은 고사하고 교인수 감소에 쩔쩔매고 있다. 독일 국가교회인 독일복음주의교회(EKD)에 따르면 현재 독일의 개신교는 51%, 로마가톨릭이 49%를 차지한다. 최근엔 종교세 부담이 커서 EKD 탈퇴자도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일 이후 기독교에 대해 서쪽은 무관심, 동쪽은 무신앙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교회가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고 기도와 회개를 외치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다. 베를린선교교회 한은선(62) 목사는 “최근 독일교회의 청소년 집회에 5000명이나 참석해 교회 지도자들이 놀랐다”며 “독일교회 상황은 어렵지만 통일세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베를린 샤롯텐부르크 지역에서 만난 기독교다니엘교회 자크쉐프스키 피셔(58) 목사도 “우리에겐 동·서독을 겪지 않은 통일세대가 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다. 암울한 미래를 단정하긴 이르다. 그들이 진정한 통합을 이루는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난민 유입도 독일교회를 변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달 17일 만난 베를린 기독교루터란트리니티교회 고트프리트 마르텐스(52)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보다 훨씬 바빴다. 하루 서너 시간만 잠을 잘 정도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신자들이 난민 돕기에 나서면서 신앙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독일 한인교회들도 독일교회와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게토화된 소수민족의 교회를 벗어나 독일의 주류 교회와 교제하며 독일의 통합과 통일 한국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한마음교회 이찬규(56) 목사는 “독일교회에는 다국적 이민자를 통해 새로운 영적 파도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많다”며 “우리 교회도 ‘코리안’이란 배타적 형용사를 버리고 열방을 향한 교회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목록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