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나성에 가면∼” 가수 권성희 “좋아하는 노래하고 훈장받고 반평생 재능기부에 기운 펄펄” 기사의 사진
사진=이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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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가 긍정적이다. 활력이 넘친다. 가수 권성희씨 말이다. 1954년생(61세)이니 환갑이 넘었다. 남녀 혼성 3인조 '세샘 트리오'를 결성해 '나성(羅城)에 가면'이란 노래로 한껏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때가 78년 초였다. 주위의 몇몇 20, 30대에게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거나, 나성의 뜻을 아는지 물어봤다.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거나 나성이란 뜻을 모른다는 대답도 적지 않았다. 나온 지 37년이 넘었으니 오래된 노래이긴 하다. 당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던 고(故) 길옥윤 선생이 만들었는데 원제는 'LA에 가면'이었다. 그런데 제목에 영어를 못 쓰는 심의 규정이 있어 할 수 없이 음역어인 나성으로 바꿨다. 장년층에게는 추억의 노래일 테지만, 지금의 K팝을 생각한다면 어이없던 시절의 가요다. 그 가수 권성희씨가 지난 2일 노인의 날에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았다. 이전에도 여러 기관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노인 복지에 앞장섰기때문인데, 30여년 동안 주로 노인과 소외계층을 비롯해 불우이웃·소년소녀가장 돕기, 군경을 위한 무료 공연을 펼쳐 왔다. 2009년부터 봉사단체인 한국연예인한마음회 회장을 맡아 노인 등을 위한 공연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단다.



권회장은 동덕여대에서 성악(메조소프라노)을 전공했다. 2학년 때 처음으로 방송을 타다 졸업하기 전에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물론 성악을 공부하다 꿈을 접고 라틴 음악을 들고 가요계로 나간 이유는 몇 가지 있다. 라틴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지만, ‘나성에 가면’ 이후에는 큰 인기를 얻은 곡이 없다. 대신 가수 생활을 하며 쉼 없는 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왜 그렇게 노인들을 위한 공연을 열심히 하는지 궁금해 지난 22일 만나봤다.

-3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인데.

“주로 노인을 위한 공연을 하는 한국연예인한마음회가 81년에 생겼을 즈음부터 꾸준히 참여해 왔다. 본격적으로는 17년 전에 비영리단체로 등록해 해마다 정기행사를 하며 회비도 내고 외부 기관으로부터 조금씩 후원도 받으며 활동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어르신들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나는 노래를 할 수 있고, 노인들은 자기가 아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니 좋고, 점심과 간식도 제공하니 참 즐거워한다. 나도 즐겁다. 봉사는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단체가 이렇게 오래 존속하는 것을 보면 안다. 참여 연예인들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여기 오기까지 회장을 맡아주었던 가수 김상희 선배가 무척 애를 썼다.”



-행사 경비가 꽤 많이 들 텐데 어떻게 마련하나.

“당연하다. 참여 연예인들의 회비와 기부금, 서울시와 국민은행 같은 기관의 후원금 등으로 공연이 지속된다. 참 감사하다. 더 많이 들어오면 더 많은 어르신들을 찾아갈 수 있다. 무료 또는 최소한의 교통비 정도만 받고 참여해주는 동료 후배 가수들이 자랑스럽다. 별 생각 없었던 젊은 후배들도 참여하면서 뿌듯한 뭔가를 느끼게 되는 일들을 본다. 내가, 우리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런 것 말이다. 재능 기부든, 후원이든 많아질수록 나눔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고 여유 있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대학 때 성악을 전공하고 소위 ‘딴따라’로 빠졌다. 가족의 반대가 없었나. 70년대 대학가에선 통기타와 포크송이 대세이기도 했는데.

“하하, ‘딴따라’로 빠지는 것을 무척 반대했다. 대학 2년 때까지 잘살았다. 내 꿈도 마리아 칼라스처럼 오페라의 프리마돈나가 되는 것이어서 항상 그의 사진을 방에 걸어놓기도 했다. (또 쾌활하게 웃으며) 이쯤에서 얘기가 되려면 집안이 망해야 한다. 맞다. 건설업을 하던 선친께서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자 가세가 기울었다. 풍비박산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업 융자금도 못 갚고 내 등록금 내기도 버거워졌다. 그때 선친이 아는 분이기도 했던 김강섭(KBS 전 관현악단장) 선생님이 자신이 출연하던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몇 차례 나갔다가 반응이 좋으니, 김 선생님이 당시 최고급 무대 중 하나였던 앰베서더 호텔의 트리오(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공연 무대에 서 보라고 했다. ‘빛과 그림자’ ‘틸’ ‘뮤직 플레이’ 같은 팝송을 부르며 정기적으로 출연했는데 한 달에 5만원씩 받았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4만∼5만원 하던 시절이다. 최고급 대학생 알바였던 셈이다. 그게 가요계로 뛰어든 운명의 시작이다. 당시 음대학과장도 한사코 말렸다. 졸업 후 유학 갔다 오면 조교수 자리가 보장돼 있는데 왜 그 길로 가느냐고. 운명인가 보다(그는 운명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성악을 공부한 것도, 가요계로 나간 것도, 그 재능으로 봉사를 하는 것도…). 그 이후에 월드컵, 오비스케빈 등 명동과 소공동의 내로라하는 레스토랑, 극장식 식당 등에 캐스팅됐다. 총수입이 한 달에 40만원쯤으로 기억되는데 나 같은 초보한테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런데 ‘나성에 가면’ 외에는 각인된 노래가 없는 것 같다.

“나름대로 여러 곡이 있는데 왜 그런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사실 내가 대중 가수라고는 할 수 없다(‘나성에 가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자 가요계에서는 패티김, 박경희를 이을 대형 가수가 될 것이라는 평이 많았다). 마음속에서 다소 갈등을 겪던 업소 무대에서의 생활을 접고, 당시 좀 생소했던 라틴 음악을 해보자고 해 세샘트리오가 결성된 것이다. 사실 라틴 음악을 잘 몰랐으나 열심히 공부하고 따라갔다. 트리오 로스 판초스 같은 라틴음악계 거장들의 노래들을 불렀다.”



-지금 가요계와는 많이 다르던 시절이다.

“당시는 가수의 가창력이 최우선이고, 모든 노래가 라이브였다. 지금은 환경이 다르니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이런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수로서 최소한의 명맥만 유지한 것이다. 여러 사람과 자선 디너쇼를 한 적은 있는데 내년에 처음으로 단독 디너쇼를 할 예정이니까. 새 노래를 내놓으려고 하는데 잘될지 모르겠다.”



-기부가 많아지면 신이 나겠다.

“하하. 일단 공연을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더 생긴다. 28일에 경북 칠곡에서 ‘찾아가는 마을 콘서트’를 연다. 이 행사는 문화예술계의 지원을 받아 1년에 10회씩 한다. 또 내년에는 서울시 25개 구청에서 하는 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있다. 기부가 늘어나면 이런 걸 많이 할 수 있다.”



-인사치레 같지만 환갑을 넘은 것 같지 않다.

“거의 매일 TV 보면서 스트레칭하고 수영도 한다. 밤 9시 이후에 아무것도 안 먹고, 인스턴트식품은 입에 대지 않는다. 1년에 한 번이나 라면을 먹을까. 이래 봬도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능기부를 하고 나눔에 신경 쓰면 에너지가 팍팍 생긴다. 한 번들 해보세요.”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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