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소아암 친구 위해 춤춰요”… ‘중딩’ 금이가 달라졌어요 기사의 사진
다문화 학생으로 구성된 댄스팀이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장터 앞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다문화가정 초·중학생 6명은 지난달부터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고려대 문과대 댄스 동아리 ‘라온제나’의 형과 누나들에게 춤을 배웠다. 기초부터 익혀야 했지만 굵은 땀을 흘리며 길거리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으로 얻은 수익금과 기부금 등은 소아암 청소년에게 전달했다. 이동희 기자
지난 4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장터 앞 인도에서 경쾌한 K팝 댄스음악이 울렸다. 한 무리의 학생들은 인도에서 리듬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0여명의 아이들이 펼치는 춤사위에 행인들은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10여분이 흘렀다. 어느새 150여명으로 불어난 관객들이 이들을 둘러싸자 거리에 훌륭한 콘서트장이 만들어졌다. 행인들은 때때로 환호성을 지르고 휴대전화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흥에 겨운 한 외국인 관광객은 게릴라 콘서트장이 된 인도 한복판에서 함께 몸을 흔들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국민일보가 ‘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시리즈의 하나로 마련한 다문화 학생들의 길거리 공연이었다. 길거리 공연의 기획·운영은 국민일보 사회공헌사업 협력 기관인 ㈜어나더챈스가 맡았다. 다문화 학생들로 댄스팀을 구성하고, 길거리 공연을 한 뒤 모금액을 소아암 청소년에게 전달했다. 다문화 학생들이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계기를 마련해주려는 취지다. 다문화가정 초·중학생 6명이 팀을 짜서 대학생 댄스 동아리들의 재능 기부를 받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소극적인 아이, 억척스러운 엄마

중학생 유금(14)군은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권해 댄스팀에 합류했다. 유군은 ‘역사광’이다.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역사 속 전쟁 이야기에 빠져든다. ‘삼국지’, ‘수호지’ 같은 중국 역사소설은 거의 읽었다. 우리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삼국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역사책을 섭렵했고, 최근엔 임진왜란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책을 탐독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인이 되고 싶어졌다. 나라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킨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중국동포로 2000년대 초반에 입국한 유군의 어머니(46)는 아들이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갖길 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꿈이 군인이란 걸 알고 육군사관학교에 문의해 함께 견학을 갈 정도로 적극적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는 아이가 못마땅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게으르다(웃음). 도무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길거리 공연에 지원한 것은 아이에게 적극성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대학생 형과 누나들을 만나면 활동적인 아이가 될 것 같았다.

그는 “다른 한국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니까 무작정 부딪힌다. 아이 아빠가 공사장에서 얼굴이 새카맣게 타면서 돈을 벌고 있다. 결혼도 늦게 한 편이라 아이 미래를 위해 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학생 댄스 동아리 회원들과 한 달 남짓 연습하는 동안 유군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유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생 누나와 형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구부정하게 다니던 어깨도 펴고 다닌다.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거나 장난감을 만들던 시간도 줄었고, 활동적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서 아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렸을 때 봉사도 많이 해봐야 한다. 공부만 잘하는 것보다 봉사가 아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이번에 알았다”고 덧붙였다.

“저희가 더 많이 배웠어요”

다문화 학생에게 춤을 가르치는 일은 고려대 문과대 댄스 동아리 ‘라온제나’가 담당했다. 지난달 12일부터 공연 전날까지 10여 차례 강습을 진행했다. 다문화 학생 6명 모두 춤을 춰본 적 없어 기초부터 하나씩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세 번씩 만나 가르친 날도 있다. 공연일이 다가오면서 길거리 공연을 부담스러워하자 자신들도 함께 무대에 서겠다며 아이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동아리 회장인 성지수(21·여)씨는 “처음에 고교생을 가르치는 걸로 알았는데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어서 당황했다”면서도 “아이들이 밝고 잘 따라줘 어렵지는 않았다. 동아리 이름인 라온제나는 우리말로 ‘온전히 즐기다’는 뜻이다. 그냥 즐겁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특히 성씨는 아이들에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직접 부딪혀보니 그냥 여느 아이들처럼 밝은 아이들이었다. 일대일로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줬는데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애착이 생겼다”며 “다문화와 외국인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던 멤버도 있었는데 오히려 더 많이 얻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학교 밖 청소년 등 위기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나더챈스는 댄스 프로그램을 좀더 활용할 계획이다. 이번 공연을 총괄한 한민경 실장은 “아이들이 산만해서 걱정 많이 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춤이라는 소재여서 걱정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며 “특히 부모님들 반응이 좋았는데, ‘아이가 자신감을 얻었다’며 손을 잡아주신 어머니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잘 컸으면…”

길거리 공연을 본 관객들 반응도 뜨거웠다. 대학생 윤유민(21·여)씨는 “춤추는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다. 어렸을 때 영국에서 산 경험이 있다. 그래서 다문화 사회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도 나가면 외국인이다.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지 말고 잘 컸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최가은(16)양은 “나노 블록을 사러 왔다가 음악소리에 이끌려 구경하게 됐다. 또래 친구들이 춤을 추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 공연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니 더욱 뜻 깊은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박성호(33)씨는 “공부하느라 춤 연습을 많이 못한 거 같다(웃음). 그래도 풋풋하고 예뻤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인 줄 몰랐다. 내 안에 뭔가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다문화 청소년들을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인데 곤란할 것이다. 아이들을 잘 키워 나라의 버팀목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관광 왔다는 로드(39·미국)씨는 “원래 이런 즉흥 공연을 좋아한다.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 팀은 정말 잘 추는 것 같다. 작은 학생들도 귀여웠다. 미국도 인종차별이 심각한 문제다. 한국은 잘 극복하길 바라며 이 아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잘 컸으면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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