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디아코니아+케리그마+코이노니아 3중 신학이 獨 통일 기초

제4부 통일코리아를 향해-<3> 獨 하이델베르크 (下) 보수·진보 아우르는 통일신학의 정립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디아코니아+케리그마+코이노니아 3중 신학이 獨 통일 기초 기사의 사진
독일 하이델베르크성에서 내려다본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전경. 교회 첨탑만 높게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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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州)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독일 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학문의 도시답게 고색(古色)의 중세풍을 간직하고 있었다. 네카르강이 도도히 흘렀고, 산중턱의 하이델베르크성(城)은 13세기 르네상스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성에서 내려다본 시가지는 교회와 성당의 첨탑만 높이 솟아있을 뿐 도시 전체는 숲에 둘러싸인 채 고즈넉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은 이런 시가지 속에 자리 잡았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이곳이 대학 캠퍼스인지 모를 정도로 시가지와 비슷비슷했다. ‘디아코니아연구소’는 대학촌 끝에 있었다.

1954년 설립된 연구소는 하이델베르크대 신학부의 부속기관이다. 석·박사과정 학생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를 제공한다. 실천신학의 디아코니아(봉사) 분야를 연구하고 독일교회 디아코니아 신학의 토대를 제공해왔다. 지난달 14일 이곳에서 만난 하인츠 슈미트(72·사진) 전 소장은 “디아코니아는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봉사를 의미한다”며 “이를 실천하는 ‘독일 디아코니(Diakonie)’는 개신교회의 사회적 복지 기구로서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교회의 ‘3중 통일신학’, 디아코니아 케리그마 코이노니아=독일 디아코니는 독일복음주의교회(EKD)에 소속된 19개 자선단체를 포함해 전국 69곳에서 공중보건 아동복지 사회봉사 등 11개 분야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본부는 베를린에 있다.

슈미트 전 소장은 “통일 이전 서독교회 디아코니는 구동독교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며 “특히 동독 목사들에게 자동차와 석유, 타자기와 종이, 난방비까지 다양하게 지원했다. 무려 40년을 도왔다”고 말했다. 슈미트 전 소장도 그 연장선상에서 통일 직후인 1990년 12월부터 1년 간 구동독 라이프치히대학에 교수로 자원해 디아코니아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주중엔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주말엔 집에 왔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며 “서독교회와 교인들은 통일 이전부터 동독교회와 자매결연을 하고 디아코니아를 실천했다”고 회고했다.

이범성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독일에서 디아코니아는 통일의 완성을 위한 독일교회의 3중 통일신학의 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서독교회의 ‘디아코니아적 파트너십’과 동독교회의 ‘예언자적 케리그마(말씀 선포)’가 만나 통일을 이뤘고, 지금은 ‘코이노니아(친교)’가 이뤄지고 있다”며 “디아코니아와 케리그마, 코이노니아라는 ‘3중 신학’은 독일 통일을 이룩한 신학적 토대였다”고 말했다.

분단 시절 동독교회의 케리그마는 엄중한 권위가 넘쳤다. 서슬 퍼렇던 비밀경찰 ‘슈타지’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한은선 베를린선교교회 목사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장벽이 무너지기 한 달 전인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 3개 교회에서는 기도회가 열렸고 말씀이 선포됐다”며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던 성니콜라이교회와 토마스교회, 미카엘리스교회 목사들은 모두 기도회를 개최해 비폭력 행동과 온유, 용기를 북돋는 설교를 전했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당시 세 교회에 모인 신자들은 3000명에 달했다”며 “기도회와 예배를 시작으로 촉발된 평화시위는 독일 통일을 이루는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번졌다”고 덧붙였다.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통일운동 이루자=국내 신학자들도 독일교회의 3중 신학처럼 한국교회의 확고한 통일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성찰 아래 통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회봉사부 총무 이승열 목사는 “신학적 이해 없이는 평화통일을 이루기 어렵다”며 “신학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차이와 대립,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신학이 견고하지 않으면 교회는 이념의 덫에 빠진다. 주도홍 백석대 교수는 “한국교회가 북한 문제를 다룰 때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성경적 관점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토록 성경적 진리를 강조하다가도 남북문제에 대해서만은 너무 쉽게 이념적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성경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 내부에 통일신학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진영의 교회 모두 통일신학을 추구해왔다. 다만 통일신학의 전제가 되는 분단에 대한 분석에서 입장차가 존재했다. 진보 쪽에서는 분단의 원인을 강대국의 냉전체제라는 죄악에서 찾은 반면 보수 쪽에서는 한민족의 죄과(罪過)에서 찾았다.

신옥수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지난해 ‘평화통일신학의 형성과 과제’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한국교회는 민족 분단이 단지 정치적·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문제만이 아니라 증오와 적개심, 원한 등이 뿌리 내리고 있는 죄악의 문제임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며 “민족 분열과 정치적 대립은 사회구조적이며 동시에 영적 차원의 죄악”이라고 규정했다. 신 교수는 통일신학의 출발점은 진지한 죄의 고백과 진정한 회개의 행동이 구체화되는 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려 했다.

통일신학의 성경적 배경은 화해와 용서의 복음에서 출발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인용하는 성경 구절도 비슷하다. 에서와 야곱의 화해(창 33), 요셉과 형들의 화해(창 45), 형제의 연합(시 133:1), 전쟁의 종말(사 2:4), 화해와 평화의 사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눅 4:18, 요 14:27) 등이다.

최근 통일신학은 진영 논리를 떠나 ‘하나님 나라’ 신학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통치 영역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정의와 사랑, 평화와 치유, 화해와 해방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는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를 포함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을 총괄한다”고 말한다.

주 교수는 ‘이미(already)의 통일론’으로도 표현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 나라(天國)는 ‘이미’ 임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not yet)’ 것으로 이해된다. 주 교수는 이를 차용해 ‘아직’ 분단 상태이지만 한국교회가 예수의 심정으로 북한 동포를 사랑할 때 통일이 ‘이미’ 임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만날 수 없고 반목할 수밖에 없는 분단 현실 가운데서도 독일교회가 가졌던 특별한 유대관계의 바탕에도 ‘이미의 통일론’이 있었다”며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이런 통일신학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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