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양민경]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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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가까운 선배가 마련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다. 질문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온 선배의 지인이 꺼냈다. 영화제에 출품된 한 종교 영화에서 나온 질문인데 거기서 제시한 답이 매우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답은 ‘두려움’ ‘허영’ ‘나태’ 세 가지. 선배의 지인이 세 가지 답 가운데 어느 것이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지 물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3명이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답을 골랐다.

3개의 선택지 중 내가 택한 건 ‘두려움’이었다. 구직 시절 내 삶은 두려움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 진로를 결정한 나는 졸업을 1년 반쯤 앞두고 불안감에 닥치는 대로 공모전이나 자격시험에 도전했다. 언론 분야 전공이 아닌 만큼 여러 경험이 있으면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몇몇 요건을 갖춘 후에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강호엔 고수가 많았고 입사 전형에서 내 능력은 쉽게 밑천을 드러냈다. 언제까지 경험을 쌓고 시험을 봐야만 할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밤늦게까지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났다.

최근 취직을 준비 중인 청년들도 당시 내가 느꼈던 두려움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 같다. 아니, 더 심해진 모양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유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포에 ‘대인관계·내 집 마련 포기’를 더한 ‘5포 세대’가 나왔다. 최근엔 아예 인생의 여러 부분을 무한대로 포기한다는 뜻의 ‘N포 세대’가 등장했다.

청년들의 암담한 현실을 다룬 신조어 중 가장 화제를 모은 건 ‘금수저’와 ‘흙수저’다. 금수저는 수저로 가정 형편이나 경제력을 가늠하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의 가장 상위 단계고 흙수저는 최하위 단계다. 수저론은 부유한 집 자제를 수저에 빗댄 영어 관용구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에서 파생됐지만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수저 앞에 ‘금’ ‘은’ ‘동’ ‘흙’ 등을 붙이면서 의미가 더 세분됐다. 부모의 자산과 연 수입별로 줄 세워 계급을 정리한 ‘수저기준표’나 생활수준으로 흙수저를 가려내는 ‘흙수저 빙고게임’도 SNS상에서 널리 읽혔다.

이들 신조어들은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들의 자포자기 정서를 대변한다. 이 땅에서 애면글면 노력해도 ‘어차피 승자는 금수저’라는 것이다. ‘지옥불반도(지옥 같은 한반도)에선 탈(脫)조선만이 답이다’란 자조적 표현이 청년층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금수저는 실제 어떤 상황이든 절대적으로 유리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근저 ‘다윗과 골리앗’에서 “강력하고 힘센 것들이 언제나 겉보기 같지 않다”며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승리 사례를 여럿 제시한다. 그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맞서는 행동은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며 “힘을 가진 자는 보이는 것만큼 강하지 않고, 약자도 보기보다 약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은 때때로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꿔놓을 수 있다”며 “약자로 존재한다는 건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고 자신을 일깨우며,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던 것을 가능케 만든다”고 말한다.

성경도 강자가 항상 유리하진 않으며 약자에게도 동일한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 9:11)

청춘들의 자포자기 정서는 현실의 암담함을 교묘히 파고든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두려움을 이기는 건 용기다. 아집을 내려놓을 용기, 내 가능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혹은 가볍게 무시할) 용기, 꼭 이 길이 아니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용기 말이다.

광운대 인문대학 수석 졸업자로 모교 앞에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하는 이준형씨는 가게를 차린 이유로 “대기업 취직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용기로 두려움을 극복할 때 변화가 생긴다. 두려움이 찾아올 땐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기억하자.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맞춘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집요하게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양민경 종교기획부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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