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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내년에 ‘선거구 실종’ 사태 온다?

“여야, 한국사 교과서 논쟁 핑계로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 또 넘길 셈인가”

[김진홍 칼럼] 내년에 ‘선거구 실종’ 사태 온다? 기사의 사진
한국사 교과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성명전에 이어 보수와 진보세력의 집회가 잇따라 열리는 등 장외로 번졌다.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면서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증오는 증폭되고 있으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국정은 마비 상태다.

‘역사 전쟁’ 와중에 발만 동동 구르는 이들이 있다. 20대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정치신인들이다. 여야가 한국사 교과서 논쟁을 이유로 총선의 기본 룰인 선거구 획정을 마냥 미루고 있어 어디에서 뛰어야 할지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선거구 획정의 법정시한을 지킨 적은 거의 없다. 17, 18, 19대 총선 때도 선거를 한두 달 앞두고 부랴부랴 확정했다. 의원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탓에 힘겨루기로 소일하다가 밀실에서 졸속으로 결정한 것이다. 당연히 제 밥그릇 챙기기, 나눠먹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폐단을 없애겠다면서 여야가 지난 7월 중앙선관위 산하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획정안을 만들지 못한 채 지난달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여야가 4명씩 추천하고, 선관위 인사 1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결정족수를 3분의 2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위원들이 여야의 대리전을 펼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6명의 찬성을 받아 의결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최종 결정권을 직접 행사하겠다는 여야의 복선이 깔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국회의원 정수와 지역구 및 비례대표 비율 등 주요 기준을 정해달라는 획정위의 요구를 정치권이 묵살한 점도 비난받을 만하다.

계획대로라면 획정위는 지난 달 13일까지 국회에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하고, 선거법상 국회 정개특위는 총선일로부터 5개월 전인 오는 13일까지 최종안을 의결해야 한다. 법정시한이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논쟁으로 인해 정개특위는 휴업 상태다. 따라서 예전처럼 법정시한을 넘길 공산이 농후해졌다.

문제는 또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현행 선거구는 올해 말까지 효력을 갖는데, 선거운동 개시일은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내달 15일부터다. 선거구 획정이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예비후보자들이 내년부터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총선 일정이 스톱되는 비상사태를 의미한다. 일각에선 총선 연기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현역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선거구 획정 지연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 인지도나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선거운동 기간이 짧을수록 정치신인보다 현역 의원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여야는 느긋하다. 서둘러야겠다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 사상 최악의 국회를 만든 19대 의원들이 임기 마지막까지 기득권 지키기에 의기투합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치신인과 함께 유권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번엔 어느 후보가 지역일꾼으로 합당한지 시간적 여유를 갖고 꼼꼼히 살펴본 뒤 투표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그만큼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권은 제한받게 되는 것이다.

선거구를 정하는 건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 민감한 행위다. 그러나 4년마다 반복돼 온 사안이다. 여야가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헌신짝 버리듯 법정기한을 또 어기면 노동·공공·교육·금융 개혁보다 정치개혁이 훨씬 더 시급하다는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선거구를 알 수 없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정치가 너무 헤매고 있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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