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훈] 기로에 선 노동운동 기사의 사진
노동개혁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휘몰아친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 탓도 있지만 9·15 노사정 협약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 또한 드세다. 민주노총은 이 협약을 ‘해고를 쉽게 하고 사용자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90%에 달하는 절대다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 조건을 천 길 낭떠러지로 내몬 노동개악’으로 규정하고 ‘노사정 야합’을 ‘분쇄’하기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투쟁이 과연 ‘90%에 달하는 절대다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차제에 민주노총은 기업별 노조 체제의 한계에 갇혀 내셔널센터임에도 이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전략적 리더십 부재에 대한 자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에는 늘 ‘강성노조’ ‘귀족노조’ ‘집단이기주의’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노조는 기업별 노조다. 기업별 노조의 기능적 합리성은 당연하지만 기업 경영에 노조가 ‘협조적’인 자세를 보일 때 긍정적으로 발휘된다. 기업별 노조의 존립 기반인 장기에 걸친 고용 보장과 연공적인 승진·보상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행태는 이러한 기능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직무의 통폐합 및 확대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는 노동 강도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경기 변동에 따른 투입 노동량 조절을 위한 배치전환도 노조 동의 없이는 시행하기 힘들다. 노조의 단결력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인사평가에도 부정적이다. 이른바 ‘정리해고’에는 ‘해고는 살인’이라며 결사반대하지만 정규직의 고용 안정이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이라는 조절판을 전제로 담보되고 있는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그럼에도 임금 인상을 위해서는 매년 파업까지 불사한다. 인건비 상승에 대한 부담은 부품·협력사 등 중소기업으로 전가되기 십상이다. 원·하청 관계에서 발휘되는 수요 독점력에 기대어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지금껏 ‘지대’를 향유해 왔지만 철강·자동차·조선·전자 등 주요 제조업의 성장동력 상실이 우려되는 가운데 ‘지대’를 향유할 여력조차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업별 노조 체제의 한계는 그 배타성과 폐쇄성에 있다. 산별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애써 왔지만 임금 결정은 여전히 기업 단위에서 이뤄지며, 업종이나 직종별 임금 수준의 평준화 내지 표준화 기능은 극히 취약하다. 내부 노동시장에 포섭된 정규직과는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통상 정규직 노조로부터 배제되며, 실제 정규직 노조는 정규·비정규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노동운동도 기업별 노조 체제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협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닌 민주노총으로서야 외면하고 싶겠지만 다행히 그 해법은 9·15 노사정 협약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대·중소기업(원·하청) 상생협력 등 동반 성장을 위한 ‘성과 공유 활성화’, 중소 협력업체 및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복지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사정의 부담 분담’, 노사정 간 ‘상생 협력을 위한 사회적 책임 행위준칙’ 마련, 적정 단가 보장을 위한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등 모두가 노동시장의 구조개선을 위해 노동계가 반드시 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할 과제들이다.

어렵사리 차려진 밥상을 통째로 걷어차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양대 노총의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리더십 발휘가 절실히 요망된다.

김훈 한국노동연구원 명예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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