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고민이었던 ‘다문화’, 그 뿌리에서 미래를 찾았죠” 기사의 사진
LG다문화학교 1기 졸업생 왕천영 이명은 바수데비씨(왼쪽부터)가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LG마포빌딩 앞에서 ‘다문화’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다 활짝 웃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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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출신 3인의 여대생, 다문화를 말하다


서울 마포구 LG마포빌딩에 지난 1일 스무 살 꽃다운 여대생 셋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각각 일본인 어머니, 중국인 아버지, 인도인 아버지를 둔 청년들이다. 수다의 주제는 ‘다문화’였다.

세 여대생은 모두 ‘다문화’란 배경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역경을 극복할 힘도 ‘다문화’에서 찾았다고 했다. 다문화를 얘기할 때 ‘배려’나 ‘지원’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게 불편하다고,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되려면 더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열린 마음’이 열쇠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명은(20)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국에 왔다. 입학 전 잠깐 다닌 어린이집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이씨는 “‘왕따’를 당했는데, 그때는 나 빼고 모두 흑백으로 보였다”고 털어놨다. 이런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중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쪽바리’라고 선생님도 싫어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씨의 ‘특별함’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는 “내 배경을 신기해하고 일본어와 일본문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늘면서 마음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13년, 대학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열린 마음’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는 열쇠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아직 우리 사회에는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많다. 편견을 없애는 가장 빠른 길은 교육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다문화의 장점을 죽이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남들은 배우려 하는 제2의 언어를 거꾸로 잊어버리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정으로 살다보면 편견 탓에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감추려는 경우가 많다”며 “서로 열린 마음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연구원이 되려고 이화여대 분자생명공학부에 진학했지만 요즘 조금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다문화와 관련해 저를 찾아주는 분이 많다”며 “나만의 특성을 살려 국제 교류에 기여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일방적 ‘지원’ 대신 서로 ‘노력’을

왕천영(20)씨는 조선족 어머니와 한족(漢族)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중도입국 학생’으로 처음 한국에 왔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해 수업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그는 “중국어 책을 가져와 읽거나 중국 커뮤니티에서 나온 신문을 읽었다. 친구도 사귈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해 환경을 바꾸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그의 강점이 나타났다.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난 중국어 실력은 그의 ‘특징’이 됐다. 중·고교 시절 제2외국어를 쉽게 공부하는 그를 보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대 한국사학과에 입학해 방송 PD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다.

왕씨는 다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태도가 아쉽다고 했다. 그는 “‘다문화’라고 하면 대부분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을 떠올리지만 서양에서 온 다문화 가정은 ‘혼혈’이라고 부르며 부러워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짱깨’ 같은 단어에 담긴 편견을 우려하며 “언어의 힘이 생각보다 커서 때로는 말이 상황을 규정한다. 편견이 담긴 어휘를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한 다문화 사회는 서로 노력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왕씨는 “사회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다문화의 참 의미 고민하며 ‘다문화 전문가’ 양성해요

바수데비(20)씨에게는 한국인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가 있다. 이국적 외모와 달리 그의 고향은 한국이다. 인도 생활은 7∼9세 때 인도에서 영어로 가르치는 외국인 학교에 다닌 게 전부다. 바수씨는 “어려서부터 한국에 살기도 했고 의기소침한 성격이 아니어서 별다른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며 “짓궂은 친구들 장난에도 ‘네가 뭔데 나를 놀리느냐’ 하면서 편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그가 ‘다문화’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경기도 안산 등지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현장에서 느낀 다문화정책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고 한다. 바수씨는 “다문화라는 단어 하나로 묶기에는 유형이 너무 다양한데 포괄적인 정책을 펴다 보니 각 정책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며 “상황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다문화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봤다. 바수씨는 “다문화 학생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은 많지만 전문교육을 받은 멘토는 많지 않다”며 “다문화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다문화라고 하면 외국인 아내를 농촌에 데려와 사는 것을 떠올린다. 이렇게 극히 일부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다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 “현재 우리가 쓰는 다문화라는 말에는 원래 의미보다 ‘이방인’이란 시각이 더 많이 담겨 있다”며 “섬세한 다문화 감수성을 길러야 할 때”라고도 했다.

경인교대 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그의 꿈은 열정이 넘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바수씨는 “다문화 교육에 관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교 밖 다문화 아이들도 챙기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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