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4부)] 북한은 예수 구원 대상… 지원 아닌 나눔 정신으로 문 열어야

(제4부) 통일코리아를 향해 - <4> 한국교회가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 앞장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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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기독 NGO들은 북한 지원의 끈을 놓지 않고 제3국 등을 통해 북한을 도왔다. 2012년 9월 기아대책 직원들이 북한 동포들에게 보낼 의류와 신발 4만여점을 컨테이너 박스에 싣고 있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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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한 첫 단추는 민간교류 활성화다. 그 과정에서 상호 신뢰를 쌓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해야 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간교류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기독교인에게는 이 땅을 화평케 하러 오신 예수님의 복음이 있다. 한국교회에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감당해야 할 남다른 사명이 있다.

◇“정부, 민간교류 창구는 열어줬으면”=“남북 민간교류를 꽁꽁 얼어붙게 한 5·24 조치를 풀어달라고 성명서도 내고, 간청도 하고, 사정도 해 보고, 이러면 안 된다고 압박도 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제3국을 통한 간접 지원으로 겨우 숨통만 틔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요.”

교계 평화통일운동 단체의 한 간부가 3일 푸념처럼 늘어놓은 말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태의 책임을 물어 5·24 조치를 취한 이후 남한의 대북지원 시계는 멎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통일부의 대북지원 현황 자료(표 참조)만 봐도 드러난다.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가운데 40% 정도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단체들의 몫인 것으로 추산된다.

1995년 본격 시작된 대북지원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활짝 꽃을 피웠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다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뒤 2010년을 기점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민간지원액은 54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2004년 1558억원의 3.5% 수준에 불과했다. 남북 민간교류가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교계에서는 이제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북 간 정치와 민간교류를 분리해 안정적·지속적 민간교류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관우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통일연구소장은 “대북지원 20년간 민간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디딤돌 삼아 도약해야 할 시기에 거꾸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며 “정부는 못하지만 교회는 ‘화평케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 꽉 막힌 틈새로 실핏줄이라도 흐르도록 길을 열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념을 넘어서는 복음”=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남아 있다. 분단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북지원 물자가 북한의 민간이 아니라 군부로 흘러들어 간다며 ‘북한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등에 대해서도 선전용일 뿐 진짜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남북교회 교류를 비판한다.

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인 주도홍 백석대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의 저변에는 북한에 대한 이념적 적대감이 깔려 있다”면서 “절대적 가치인 복음으로 낡은 이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복음과 유물론은 결코 싸움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철저하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북한을 예수의 구원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전용호 목사도 “이념을 앞세워 북한을 때려잡을 대상으로 보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해서 되겠느냐”고 말했다. 분단의 상처 때문에 이념의 덧칠을 벗겨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묵은 때를 벗겨낼 때 비로소 통일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념적 대결 구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각에서 북한 주민을 바라볼 때 ‘교회가 왜 퍼주기를 하느냐’고 묻는 대신 ‘교회니까 퍼줄 수 있다’고 수긍할 수 있다. 봉수교회 등의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 공산독재국가인 북한의 수도 평양에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드릴 수 있다.

교계 일각에는 여전히 북한체제의 붕괴 외에는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북한 지하교회에 주목하고 체제비판용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독일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증오와 분노에 기초한 적대 정책이 아니라 복음에 기반한 디아코니아(봉사)가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데 더 효과적이다. 서독교회는 분단 40여년간 정치적 변수나 내부 논란에 휩쓸려 동독교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적이 없다. 이렇게 쌓아온 신뢰와 이해가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교회도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화해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박경서 전 유엔 인권대사는 “정부는 그렇게 못해도 교회만은 북한 사람들이 아무리 미워도 그들 편에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다”며 “교회는 남북 대치를 조장하는 발언을 삼가고 평화와 화해의 사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해야 도와준다? 노! 스스로 변하게 도와야”=한국교회와 기독 NGO들이 남북 민간교류 과정에서 이룬 성과는 적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 방식과 태도를 업그레이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한국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말 대포’를 너무 많이 쏜다는 얘기가 나돈다. 덥석 약속부터 해놓곤 제대로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대북단체 관계자는 “북측에서 남한의 어느 기독교 단체가 큰소리만 치고 약속을 안 지키더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행동을 통해서라도 기독교인은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를 심는 게 중요하다.

‘당신들이 변해야 도와준다’는 식의 자세를 버리고 수용자인 북한 주민을 존중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북한을 자주 오가는 기독 NGO의 현장 활동가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 중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지원해야지, 우리가 이걸 줄 수 있으니 무조건 받으라고 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여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지원’이라는 표현 대신 ‘남북협력’ ‘남북나눔’이라는 용어를 쓰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장은 “‘우리가 얼마나 도왔다’고 하며 선전하기 바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며 “지나친 경쟁을 삼가고 정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중복 지원이 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을 오가는 활동가들은 우리의 지원으로 북한 사회가 변하는 것 못지않게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과 쌓아가는 신뢰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오랫동안 대북사업을 펼쳐온 단체의 대표는 “현장에서 북한 사람들과 만나고 식사하고 며칠 동안 같이 ‘삶’을 나누면서 신뢰가 쌓이니 나중에는 ‘우리 목사 선생 오셨다’며 손뼉치고 맞아주더라”며 “이런 무형의 가치가 소중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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