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리즈 Ⅱ]  한국경제 허리 두텁게… ‘히든챔피언’ 100개이상 만든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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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은 히든챔피언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의 히든챔피언 숫자는 63개사로 독일의 2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도 대기업 중심 경제시스템의 무게추를 중소·중견기업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히든챔피언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2017년까지 100개사 이상의 히든챔피언을 키워 미래 한국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다.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한국의 히든챔피언=베스트셀러 ‘히든챔피언’의 저자인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앤드파트너스 회장은 독일 내 히든챔피언을 총 1307개사로 보고 있다. 히든챔피언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량기업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지몬 회장은 세계시장 점유율 1∼3위 또는 대륙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연 매출 50억 유로(6조7000억원) 이하의 기업을 히든챔피언 선정 기준으로 정했다.

지몬 회장은 한국의 히든챔피언 숫자를 총 23개사로 계산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몬 회장이 부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했고,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3년 발간한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인 한국의 중소·중견기업만 198개사로 파악된다.

이에 정부는 한국형 히든챔피언의 기준을 새로 정립했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비 비중 2% 이상, 수출 비중 20% 이상 등의 조건을 붙였다. 그 결과 한국의 히든챔피언은 63개사로 추려졌다.

하지만 63개사도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했을 때 상당히 낮은 숫자라는 지적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보다 3배 많지만 히든챔피언 숫자는 20배가 넘는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8일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 핵심역량의 체계적인 축적이 부족했고, 정책적 뒷받침도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200여년에 걸친 산업화 역사를 가진 독일과 다르게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압축성장을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중소·중견기업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독일 경쟁력의 원천이 히든챔피언=독일 경제는 1990년 통일 직후 빠르게 성장했지만 2000년대 초반 경제가 악화되면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최근 독일은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변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2012년 대부분 선진국이 경기침체에 빠진 것과 달리 독일은 GDP 대비 6.5%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와 6.2%의 낮은 실질실업률을 기록했다. 특히 실질실업률은 통일 이후 최저치였다.

히든챔피언 중심의 중소·중견기업이 독일의 견고한 경제성장과 고용안정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몬 회장에 따르면 독일 히든챔피언의 74% 이상이 창업단계부터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했다. 전문화된 틈새시장을 개척해 세계적 기술력을 축적했고, 사업 초기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타진했다.

또 독일은 현장중심의 직업교육훈련을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했다. 마이스터 제도 등을 통해 숙련된 전문인력을 꾸준히 공급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실제로 독일 고등학생의 60%가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훈련을 받고 있고, 졸업 후에는 58%가 바로 취업시장에 유입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수립된 안정적인 경영전략도 독일 히든챔피언의 성장을 이끌었다. 가족 기업이 전체 기업의 95%를 차지하는 산업구조가 내실경영을 지향하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지역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체계도 기업의 수명이 오래가는 기반이 됐다.

산·학·연 클러스터를 통한 개방형 혁신체계는 기업 간 갈등이 최소화되도록 했다. 독일 중소·중견기업들은 지역별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기업 상호 간 협력 및 기술표준화 등 공통적 문제를 해결하는 관행에 익숙하다. 독일 전역에 400개에 가까운 클러스터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부는 경제개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뒷받침에 나섰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에 걸쳐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보장제도 혁신을 골자로 하는 입법을 성사시켰다. 후임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안을 이어가고 있다.

◇“히든챔피언 육성으로 기업 성장 사다리 복원해야”=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독일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대책’을 발표했다. 기존의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양적 성장을 글로벌 경쟁력을 기준으로 하는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우선 기관마다 산별적으로 운영하던 히든챔피언 관련 정책을 2단계로 재정비키로 했다. 기업 규모와 글로벌 역량에 따라 ‘글로벌 도약’과 ‘글로벌 성장’ 단계로 나눈다는 계획이다. 도약 단계에서는 해외시장 개척에 필요한 글로벌 경영전략, 브랜드 개발, 홍보 등을 돕고 성장 단계에는 해외 기업과의 제휴, 인수·합병(M&A), 현지투자 등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도록 지원한다.

우수 인재가 중소·중견기업으로 유입되고, 장기 재직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포함됐다. 기업 맞춤형 계약학과 제도를 통해 이공계 출신의 중소·중견기업 취업을 독려한다. 기업과 정부가 2년간 석사과정을 지원하면 해당 근로자는 학위 취득 후 기업에서 3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대책은 올 들어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015년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 및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사업’ 지원 대상으로 30개 중소·중견기업을 최종 선정했다. 산업부의 월드클래스300 사업과 중소기업청의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사업을 통합 재편한 시스템이다.

올해 선정된 기업은 중견기업 11개사, 중소기업 19개사로 평균 매출액 1064억원, 평균 수출액 5900만 달러, 수출비중 평균 56.4%로 집계됐다. 선정된 30개 기업은 세계적인 수준의 히든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향후 10년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받게 된다.

정부는 2017년까지 한국형 히든챔피언 숫자를 100개사 이상으로 늘리고, 현재 634개사인 히든챔피언 후보 기업도 1150개사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히든챔피언 숫자를 늘려서 한국 경제의 허리를 두텁게 하고,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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