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한 표의 가치 기사의 사진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1978년 12월 실시된 10대 총선에서 제1야당 신민당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을 득표에서 이기는 ‘선거혁명’이 일어났다. 신민당은 486만1204표(32.8%)를 얻어 469만5995표(31.7%)를 획득한 공화당에 승리했다. 그러나 의석수에선 공화당이 68석을 차지한 반면 신민당은 61석에 그쳤다. 1.1% 포인트 더 득표한 신민당이 오히려 7석이나 적은 비정상이 발생했다. 여촌야도 현상으로 야당은 주로 유권자가 많은 도시 선거구에서 승리한 데 비해 여당은 유권자가 적은 농어촌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많이 냈기 때문이다.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크면 이처럼 민의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기존의 3대 1에서 2대 1로 결정한 이유도 민의 왜곡을 완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투표가치 평등을 지역대표성에 우선하는 가치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최소선거구에 대한 최대선거구의 표의 가치는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커졌다. 전국을 단일선거구로 치르는 대통령선거에선 서울이나 제주 유권자 모두 한 표의 가치가 같지만 총선에선 다르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거의 유일하게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이다. 때문에 국민의 뜻이 덜하거나 보태짐 없이 그대로 반영돼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만큼의 권력 지분을 갖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다.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가 배분돼야 민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고, 사회정의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역대 총선 결과를 보면 그렇지 못했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42.8%(정당명부 득표율 기준)와 36.5%의 득표율로 50.7%(152석), 42.3%(127석)의 의석을 획득했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10.3%를 득표하고도 4.3%(13석)를 확보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의 7.9%(약 24석), 민주당은 5.8%(약 17석)를 불로소득으로 얻은 셈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6%(18석)를 도둑맞았다. 통합진보당에 돌아가야 할 의석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차지하는 민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17대, 18대 총선도 사정은 비슷했다.

현행 소선거구제와 지나치게 불균형적인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이 같은 현상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소선거구제에서는 5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사표가 대거 발생하기 마련이다. 비례대표제는 이렇게 그냥 버려지는 국민의 뜻을 국정에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처럼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 않은 의회선진국도 있으나 유럽에선 아예 비례대표로만 의회를 구성하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와 같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핀란드는 100%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양원제 국가인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폴란드도 지역구 하원의원이 없다. 독일은 하원의 경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1대 1 비율로 선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18%에 불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선거구 개정의견을 내면서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로 제시한 까닭을 알겠다.

선거구획정안 국회 처리시한을 목전에 두고 현재 여야의 벼락치기 협상이 한창이다. 지역구 의원을 살리기 위해 비례대표 비율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민의 왜곡을 심화시키는 비례대표 축소는 정의에 반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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