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리즈 Ⅱ]  타협의 정치 가능성 보인 경기도 ‘연정 실험’ 기사의 사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가 2013년 11월 27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사회민주당 지그마어 가브리엘 당수(왼쪽), 기독교사회연합 호르스트 제호퍼 당수와 연정협약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도 우파 기독교민주연합 당수인 메르켈 총리는 당시 무려 17시간이 넘는 밤샘 협상 끝에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과 ‘좌우 대연정’에 합의, 집권 3기를 위한 정부 구성의 발판을 마련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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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민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가 파행되면 여당 지도부는 고장난 전축처럼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야당도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겠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그만 좀 싸우라”는 국민의 외침에도 여야는 정쟁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5년 주기의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 쟁취의 수단이 된 국회에선 정부 실패를 낙인찍으려는 야당과 정부를 옹호하려는 여당의 일방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결국 자정(自淨) 기능이 작동했다. ‘이대로 좋은가’를 고민하던 여야 의원들은 2013년 각각 독일연구 모임을 조직했다. 합의제 정치 시스템을 구현한 모델로 독일을 주목한 것이다. 독일정치의 대화와 타협 정신에 공감한 의원들은 국회 선진화법 도입을 주도했고, 지자체장이 돼 ‘연정(聯政) 실험’에도 나섰다.

◇타협 정치의 단초 마련한 ‘경기도 연정’=복지 증세,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 고령시대를 대비한 연금개혁, 노후 원전 폐기….

국회를 거수기 삼아 대통령과 정부가 밀어붙일 경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는 국가적 현안들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폭 넓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엔 힘이 부쳐 보인다. ‘승자독식 대결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다. 결국 정치가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의 ‘연정 실험’은 토론과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 혁신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도 연정은 새누리당 내 독일공부 모임을 조직했던 남경필 경기지사가 주도했다. 남 지사는 지난해 당선 직후 사회통합부지사를 야당 몫으로 배정했고, 6개 공공기관장을 야당과 협의해 임명했다. ‘쪽지예산’ ‘졸속예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짜는 예산연정’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야권 성향 경기도교육감과 공동본부장 체제로 ‘메르스 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연정 효과는 빛을 발했다.

대권 행보를 위한 남 지사의 ‘이미지 정치’라는 지적도 있지만 경기도 연정은 아직 호평이 우세하다. 지난 5월 경기도 의회를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연설을 통해 경기도 연정을 치켜세웠다. 그는 “독일이 정당을 초월해 협력한 경험을 듣고 싶다고 하셨는데, 별로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경기도에서 이미 정당을 초월한 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의석 과반을 이루기 위한 독일의 ‘연립정부’와 경기도 연장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정책 공조에 기반을 둔 ‘연합정치’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남 지사는 연정의 장점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급변하지 않는 예측 가능성’을 장점으로 꼽는다. 남 지사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안정적인 집권 후반기를 위해서는 경기도 연정을 중앙정치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개헌과 선거제 개혁 공감대는 있지만…=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지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일사불란한 관료제와 대통령 주도 국정 운영 시스템은 이미 효력을 다했다”고 했다. 박 총장은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현 제도로는 갈등과 분열은 근원적이고, 타협과 통합은 표피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권력이 소통과 공감에서 나오는 시대로 전환하는 실정에 맞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독일연구 열풍이 분 이후 정치권에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 일부 의원들도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내년 총선 이후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외교·안보·통일은 대통령이 책임지고, 내치의 영역은 철저히 내각제로 운영하는 이원집정부제를 개헌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우윤근 의원 등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의원내각제 요소를 강화하는 데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승자독식을 못하게 하고, ‘연합의 정치’와 ‘타협의 정치’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고안된 민주적 제도가 내각제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내각제는 불안하다’는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 특히 4·19혁명 이후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던 ‘장면정부’ 하의 정국 불안과 혼란상을 경험한 고령층에선 내각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내각제는 국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총리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국회는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고, 총리도 의회에 대해 해산권을 가진다. 따라서 불신임제와 해산권 때문에 정국 불안이 상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완책으로 거론되는 게 독일의 ‘건설적 불신임제’다. 총리 불신임 전 연방의회가 과반수 찬성으로 후임 총리를 확정해야 하는 강제조항이다. 지난 60여년간 독일에서 건설적 불신임제가 시도된 게 두 차례에 그칠 정도로 이 제도는 내각제의 안정성과 함께 총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바탕이 됐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불신임제 남용으로 정국 불안이 지속된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은 제도다. 독일에서 평균 총리 재임기간이 5년제 대통령보다 훨씬 긴 것은 이 제도에 기반을 둔 것이다.

물론 개헌에 이르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다. 법조인 출신 새누리당 한 의원은 “대통령제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국회의원이 중심이 되는 내각제를 하자면 대부분 국민은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과 함께 야당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선거제도 개혁도 19대 국회에선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새정치연합 독일연구 모임을 이끌었던 원혜영 의원은 29일 “현행 선거 제도로는 40% 지지로 대의기구인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정성과 소수에 대한 배려가 가능한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이 반영된 선거제 개편을 희망했지만 힘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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