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사야] “아 이 우 에 오”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그런 사람이 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로만 대화를 채우는 사람 말이다. 대개 의사전달 과정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너는 아무래도 상관 없고, 중요한 건 오직 나’라는 태도로 말한다. 그의 말은 상대를 설득하기 어렵다. 허공을 맴돌 뿐이다. 대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진즉에 사라진다.

정부는 지난달 청년층 실업률이 7.4%로 2년5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11일 ‘말’했다. 희한하다. 주변에 취업하지 못한 친구나 후배들은 여전히 힘들다 말한다. 상황이 나아졌다는 정부의 말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이 노력을 안 하거나 무능력해서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체감 현실과 동떨어진, 상대방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은 말을 한 것은 아닐까.

정부가 근거로 삼은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29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4만8000명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청년층(15∼29세)의 취업자 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만2000명 증가했다. 분명 늘었다. 그렇다면 조금만 자세히 보자. 15∼19세 취업자는 1000명 줄었고, 20∼24세 취업자가 6만5000명 늘었다. 취업준비생이 몰려 있는 25∼29세는 3000명 줄었다.

정부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취업자를 ‘수입을 목적으로 조사 대상 주간(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근로 형태에 상관없이 수입을 목적으로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했다면 모두 취업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의 비정규직 수는 올해 3월 기준 117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4000명 늘었다. 이 중 1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가 53만6000명으로 7만2000명(15.5%) 늘었다. 특히 20∼24세 4명 중 1명이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다. 취업자가 늘기는 했지만 별 영양가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취업 준비를 하느라 학원에 다니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 등은 실업자로 치지 않기 때문에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7.4%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말실수’다. 아니 그렇게 보기도 애매하다. 우리가 평소에 저지르는 말실수는 남에게 감추고 싶은 생각을 무의식중에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억눌러져야 할 생각이 입 밖으로 표출됨으로써 난처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애초에 감추거나 억누를 생각이 없었으니 실수라고 하기 어렵다.

대학원생이던 6년 전, 서울 종로2가의 한 고시원에 머물 때였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대로변으로 나왔는데 뒤에서 “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모자를 쓴 한 남성이 은행에서 나오는 젊은 여성의 핸드백을 낚아채 뛰어가고 있었다. 그 여성은 날치기범을 쫓아가지 못했다.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놀란 듯 울기 시작했고 여성은 발만 동동 구르며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해요”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아-이-우-에-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전동휠체어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이 낸 소리였다. 자음(子音)이 하나도 없는 괴상한 소리에 모두 그를 쳐다봤다. 지체장애인인 듯한 그 남성은 안면근육을 한껏 움직이며 천천히 다시 말을 했다. “아-이-우-에-오(아기 주세요).”

품에 안은 아기 때문에 날치기범을 쫓아가지도,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있는 여성을 배려한 첫 말 한마디였다. 여성은 잠깐 망설이다 그 남자에게 아기를 안겨주고, 날치기범이 달아난 곳으로 뛰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 아기는 신기하게도 금방 울음을 그쳤다. 그의 어눌한 말투가 자신의 옹알이와 비슷하게 들려서 그랬을까. 여성은 이미 멀어진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곧 돌아왔다. 아기가 걱정됐는지 헐레벌떡 뛰어왔다가 아기의 모습을 보고 안심한 듯했다. 그날 거기서 그 여성을 위한 말을 건넨 것은 그 지체장애 남성뿐이었다.

청년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20, 30대 자살 원인 1위가 취업 등 신변에 대한 비관이라 한다. 청년들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지표를 기반으로 자기중심적 말을 하는 상대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말은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뿐이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폴렛 데일은 “‘나도 중요하고 당신도 중요하다’는 자세로 말하는 것이 건강한 대화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청년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잠시나마 짐을 대신 져주는 그런 누군가가 필요한 때다.

이사야 종교부 기자 Isaia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