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추수감사절에 생각하는 감사 기사의 사진
서울의 한 감리교회에 출석하는 박 장로는 22년을 금융권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남보다 좋은 직장, 더 나은 월급으로 그는 나름 대로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2003년, 정년을 5년 앞두고 조기 은퇴한 그는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실패로 인한 좌절감과 외로움이 수시로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그때마다 그는 신앙에 매달렸고, 그 결과 신앙은 좋아졌으며 비우고 내려놓음의 행복을 깨닫게 됐다.

사업을 접고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던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은퇴한 지식인들이 교회 내에서 불평불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감신대 교수와 함께 은퇴한 평신도들을 선교사로 훈련시켜 해외에 내보내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선교사 훈련을 받고 필리핀 오지의 선교현장으로 기꺼이 떠났다.

그가 간 곳은 마닐라에서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안티폴로 지역이다. 이곳은 2009년 태풍 온도이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마닐라 빈민가 톤토 주민들의 쪽방 이주지다. 박 장로는 6개월을 쪽방 주민들과 생활하다 잠시 귀국해 며칠 머문 뒤 지난 10일 다시 선교지로 돌아갔다. 6개월 동안 박 장로는 높은 습도와 더위, 곰팡이로 얼룩진 쪽방에서 무진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기쁨이 있었다. 그는 육신은 피곤하지만 영적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죄인을 품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듯이 언제나 돌아올 수 있고, 어머니 품 같은 대한민국이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감사 전도사’가 된 그를 보면서 2015년 추수감사절을 앞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사지수를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논농사 밭농사 과수농사가 모두 풍작이라 하늘에 의지해 수확하는 생산주체의 감사지수는 최고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고통당하는 서민들, 자영업자들, 직장을 얻기 위해 밤낮 뛰어다니는 청년실업자들의 감사지수는 높을 수 없다. 이들을 격려하고, 힘과 용기와 희망이 되는 좋은 일들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지금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쟁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정치권과 역사학계의 감사지수는 어떨까. 그들은 감사해야 할 조건이 많음에도 감사지수는 형편없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기술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실을 미화하거나 비틀거나 왜곡하고 축소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역사교육을 통해 국민을 통합하고, 후손들에게 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을 놓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정치권과 역사학계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마음의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9월 18일 중앙대학교부속초등학교는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어린이가 되자’는 주제로 1박2일 자기성찰캠프를 진행했다. 여기에 참가한 학생들이 내린 감사에 대한 정의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한 학생은 ‘감사는 아주 커다란 퍼즐 한 조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세상이 완성되려면 많은 퍼즐조각이 필요한데 감사는 그중에서 아주 커다란 퍼즐 조각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감사라는 퍼즐 조각이 모여 맞춰질 때 이 세상의 큰 행복도 완성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학생은 감사는 불행한 기억을 깨끗이 지우기 때문에 지우개라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감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틈을 채워주기 때문에 이음매라고 했다.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한 것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인생이 없었듯이 감사가 없었다면 행복도 없었을 것’이라고 쓴 내용이다.

어린 학생들의 놀라운 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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