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언어’ 영상, 그 파장은 어디까지?… 비디오 아트로 현실과 역사 조명하는 두 작가 주목 기사의 사진
임흥순 작가의 신작 영상 작품 ‘북한산’. 가수로 활동하는 탈북 여성 김복주씨가 한복 차림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임흥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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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언어로서의 영상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상업주의 예술이 판치는 세상에서 영상 언어를 무기 삼아 현실과 역사에 대해 아주 강하게 발언하는 두 작가의 영상 미술이 힘차다.

하나는 탈북 여성의 인터뷰 영상으로 분단과 통일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이대근·원미경 주연의 동명 영화 때문에 에로물의 전형으로 왜곡 돼온 판소리 ‘변강쇠’의 원래 얼굴을 찾아내고 그 날것의 언어를 식민, 징용, 민간인 학살, 전쟁포로, 위안부 등 인간의 야만이 빚어낸 역사 속에 몽타주기법으로 표현한다. 상업 갤러리를 벗어나 각각 대안공간과 공공건물에서 관람객을 손짓한다.

탈북 여성은 임흥순(46) 작가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 이후 대중 앞에 선보인 신작의 소재다. 군부독재 시절 폭압적 고문에 저항했던 고(故) 김근태 전 의원 4주기 추모전 ‘포스트 트라우마’전에 그룹전 형태로 참여했다. 은사자상 수상작 ‘위로공단’에서 무수한 노동자를 인터뷰했던 그다. 서울시청 내 시민청 갤러리에 전시한 26분짜리 영상 ‘북한산’도 같은 방식이다. 주인공은 8년 전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 현재 가수로 활동하는 김복주(37)씨.

“아빠가 주방에 들어서면 엄마는 ‘무슨 남자가 주방에 들어서고 그래요! 볼꼴 사납게!’라고 해요. 그러면 아빠는 ‘종숙동무, 외국에서는 요리사 유명한 요리사들은 모두 다 남자들이라우’하시면서….”

행복했던 유년 기억, 남한에서 사기 당한 얘기, 임진강 철책에 매달려 가족 이름을 목 놓아 불렀던 일화 등을 툭툭 뱉어낸다. 노랑 저고리, 분홍치마를 입고 산을 타는 그녀를 뒷모습으로만 담은 영상은 시종 흔들린다. 김복주의 개인사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전시 주제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한다.

김월식, 김진주, 김황, 노순택, 이부록, 전승일, 조습 등 다른 7명의 미술가들도 퍼포먼스, 회화, 영상, 설치 등을 통해 한반도의 상처와 치유, 평화와 공존에 대해 말한다. 정치인을 내세운지라 도식적일 거라는 예상을 깨는 수준 높은 전시다. 12월 6일까지(02-784-9093).

변강쇠전은 역병과 학정으로 신음하며 유랑했던 민초들이 한과 저항을 외설의 형태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19세기 판소리 연구가 신재효가 쓴 성두본의 본래 의미에 주목한 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송상희(45)다. 서울 종로구의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4년 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그가 내놓은 ‘변강쇠가’는 4채널 비디오 작품이다.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케티의 장중한 음악을 배경으로 이미지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본 오키나와의 동굴, 철원군 민간인통제구역, 1931년 한국 최초의 고공 농성자 강주룡, 배가 불룩해진 위안부, 거제포로수용소 사진 등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 중요한 장면을 담은 이미지들이 서로 다른 채널에서 시시각각 바뀌며 충돌한다. 사진 이미지 위로 작가가 그린 절규하는 ‘사람’이 떠다닌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 날밤 잠자리에 괴질에 죽고…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도둑으로 몰려 단두대에 목 떨어지고.” “이 시체 치우면 밥 줄래?” 이미지보다 더 강렬한 건 이런 텍스트다. 변강쇠가 뿐 아니라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 등에서 따온 문장들이다. 추상화되는 역사에 묻힌 개인들의 비극적 삶을 환기시키는 방식은 이렇듯 강렬하고 적나라하다. 작가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국민의 문제를, 괴질이 휩쓴 시대가 배경이 된 변강쇠가와 연결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수건에서 히잡까지 여인네들의 온갖 두건을 늘어놓은 설치 작품 ‘노처녀가’도 볼만하다. 12월 13일까지(02-396-4805).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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