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종인 <10> 대학에 ‘장애학생 도우미’ 신설하자 자원자 몰려

서로 도우며 공부하는 전통 세워 보람… 점자도서 등 정부 지원금 12억 받아

[역경의 열매] 김종인 <10>  대학에 ‘장애학생 도우미’ 신설하자 자원자 몰려 기사의 사진
1998년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가 주최한 학술캠프 후 학생들과 함께한 김종인 교수(두 번째 줄 왼쪽 두 번째).
미국에서 인간재활학을 공부한 뒤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제 한국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장애인 재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를 도울 많은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나사렛대학교 재활선교학과 교수에 임용돼 1996년 가을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학과장 전석균 교수로부터 학교 상황을 듣게 되었다. “첫 신입생은 주야간 정원이 80명인데 52명밖에 안 왔어요. 그래서 야간을 없애는 정원 조정을 했지요.”

난 재활선교학과가 재활학인지 선교학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고 경쟁력이 별로 없어 신입생 유치에 애로사항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래서 신민규 기획처장(현 총장)을 찾아가 내가 전공한 인간재활학을 한국 최초로 나사렛대에 접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김 교수님.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교육부에 가서 학과 명칭변경 승인을 받도록 합시다.”

함께 교육부에 가서 재활선교학과를 인간재활학과로 바꾼다니 교육부 담당 주무관이 “인간재활학, 참 희한한 학과네요. 어떻게 학과 이름에 인간이라는 명칭이 붙나요?”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나는 장애인도 인간이라는 관점, 신체적·정신적·영적 재활까지 포함하는 전인적 재활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무관은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명칭변경을 허락했다.

학술진흥재단에 박사학위 신고를 하러 갔을 때도 ‘인간재활학 박사’라고 적으니 담당 직원이 “인간재활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요?”라며 껄껄 웃더니 “재활학 박사로 하시지요”라고 해 그렇게 등록이 돼 있다.

인간재활학 전공자로 장애인이 눈에 너무나 잘 띈다. 당시 나사렛대에 근이양증 창훈이와 뇌성마비 은일이를 비롯한 지체장애인 3명과 수화 통역 서비스가 필요한 청각장애인, 점자 도서나 음성 도서가 요구되는 시각장애인이 입학해 공부하고 있었다.

난 이들이 정상적으로 공부하기 힘드니 학교 내에 장애학생 도우미 제도를 신설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돕겠다는 학생들이 자청해서 나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 도와가며 공부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았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 아주 잘 이어지고 있다.

강의를 하면서 두 가지가 꼭 필요한데 학교 재정이 미약해 이루지 못했다. 첫 번째는 시각장애·청각장애 학생에게 점자나 음성 도서, 수화 도서가 필요했지만 갖추어주지 못했다. 두 번째는 지체장애 학생들이 강의실을 오가려면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요했지만 너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난 새벽마다 하나님께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했고 주위에 기도를 부탁드렸다. 하나님은 기도를 정확히 응답해주셨다. 나사렛대가 교육부에 ‘점자·음성·전자 교육정보센터 설치 프로젝트안’을 올렸는데 이것이 선정돼 12억6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자금 중 3억원을 들여 시각, 청각, 지체 등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한 곳에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 최첨단 장애인 무장벽(Barrier Free) 강의실을 만들었다. 엘리베이터 역시 당장은 아니었지만 몇 년 후 “천국에는 계단이 없습니다”라는 캠페인을 펼쳐 설치를 이루었다.

기도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약자와 소외된 자를 위한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대학 특성화 어젠다를 설정하고 교육부에 제출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난 나사렛교단의 정신인 ‘긍휼 사역’을 바탕으로 재활복지 특성화를 설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뒤 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 역경의 열매 [기사 모두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