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우성규] 현수막 전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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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 앞은 현수막 전쟁터다. 전국의 민의가 모이는 곳이다 보니 여느 지하철역 부근보다 현수막 내걸기 경쟁이 심하다. 평일 점심 국회 정문 주변엔 1인 시위자들도 가세해 ‘소리 없는 아우성’ 잔치가 벌어진다. 모두가 저마다 ‘푸른 민심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구애의 손수건’이 된다.

플래카드는 붉은색이 가장 눈에 띈다. 새누리당 것이다. 주로 ‘뽐내기’ 형이다. “가뭄극복 새누리당, 가뭄대책 예산 2037억 확보”라고 쓰인 펼침막 바로 옆엔 “전통시장 소상공인 우선 새누리당, 전통상업보존구역 존속기한 2020년까지 연장”이라고 적혀 있다. 건너편에서는 “신용카드 수수료 3년간 2조1000억 절감, 새누리당과 소상공인이 해냈습니다”라고 외친다. 의석 과반인 여당의 힘이 느껴진다.

새누리당의 붉은 글씨와 비슷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인 노동당의 것도 있다. “헬조선을 바꾸는 민중 총궐기”라며 “재벌천국 노동지옥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합니다”라고 적었다. 단연 ‘부추김’ 형이다. 국회 정문 바로 옆에 자리 잡았는데, 국회 경비를 맡는 경찰 버스에 가려 문구가 잘 보이진 않는다. 차벽에 막혀 있다. 또 글은 호기롭지만 이 정당은 국회에 의석이 없다. 조금 공허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로 도심은 정당들의 검은색 추모 플래카드로 뒤덮였다. 하지만 직전까지 현수막 전쟁을 이끈 건 역사 교과서 국정화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파란색으로 “친일독재 교과서 국정화 반대”라며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꿉니다”라고 말하면, 바로 아래 새누리당이 “올바른 역사교육 새누리당”이라며 “대한민국 부정하는 역사 교과서 바로잡겠습니다”라고 써서 붙인다. 새누리당은 그 직전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그럼 왜 처벌 안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하루 만에 스스로 철거한 바 있다.

정당들만 현수막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빚내서 집 사라’ 정책 이후 분양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전세가로 내집 마련”이라거나 “여의도 10년 만의 오피스텔”이라는 부동산 ‘떴다방’ 플래카드가 부쩍 늘었다. 자치단체가 내건 ‘하지 마’ 형 펼침막도 어지럽다. 여기선 자전거 전용차로라며 주차하면 과태료 매긴다고 하고, 저기선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말라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탁 트인 한강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고급진 한강, 담배 참쥬∼”라는 현수막이 가로막는다. 연초 박근혜정부의 담뱃값 2000원 인상 정책에 호응해 ‘친박계’ 놀림까지 감수하며 끊어버린 담배가 다시 생각난다.

한국인의 플래카드 사랑은 유별나다. 입시철 지나 동네 학원 앞에 가면 그해 주요 대학에 간 친구들 이름을 다 볼 수 있었다. 행정자치부가 합격생에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는지 확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학원들의 합격 알림판은 간신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마을에서 누가 고시에 붙었는지는 현수막이 알려준다. 취업이 어렵자 요즘엔 은행에 정규직으로 합격해도 펼침막에 이름을 올린다.

현수막 사랑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옥외광고센터가 집계한 ‘광고물 종류별 옥외광고물 신고 현황’을 보니 전국의 현수막은 지난해 총 58만5636건을 차지했다. 2위인 전단 18만1147건, 3위 벽보 6만3608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옥외광고물의 63.8%를 현수막 혼자 차지했다. 현수막은 정부에 점용 허가를 받고 거는 것보다 몰래 하는 불법이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는 불법 현수막을 가져오면 개당 2000원씩 주는 수거보상 제도를 해보겠다고 나섰고, 행자부는 불법 현수막 근절 정책 아이디어 공모전까지 성대하게 치렀을 정도다.

디지털 시대이고 누구나 자기 생각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통해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피드백도 얻는다. 각 정당에도 SNS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현수막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수막은 싸고 간편한 데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여론을 몰아가는 데 효과가 있다. 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얼른 떼어 버리면 끝이다. 바꿔 말하면 현수막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다. 내용도 한두 줄로 압축하면 그만이고, 시간 좀 지나면 소각로에서 태워버리면 된다. 그러니 과감하게 주체사상이나 총궐기 운운할 용기가 나오는 것이다. 치고 빠지기 스타일의 현수막 제작할 힘을 아껴 민생을 돌보는 데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고급진’ 사회는 현수막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성규 온라인뉴스부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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