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프리미어12 우승 이끈 ‘국민 감독’ 김인식] 개인 아닌 코리아 팀워크  기적 일군 원동력이었다 기사의 사진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김인식 감독이 선수 개인이 아닌 ‘코리아’라는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의미로 검지손가락을 펼쳐 보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김인식(68) 감독은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행사 참석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매일 밤늦게까지 식사가 이어진다. 그의 인기도 대단하다. ‘국민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이렇게 깊이 실감할 때도 없었다. 가는 곳마다 사인 요청은 기본이고,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는 식당 주인도 많아졌다. 커피숍에서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돈을 지불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우승 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2009년 WBC 준우승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11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KBO(한국야구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老)감독은 행사에 보낼 것이라며 50여개의 야구공에 일일이 사인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그의 휴대전화 벨은 수없이 울렸다. 그래도 싫은 기색은 없었다. 배려가 몸에 밴 듯했다.

-우승의 여운이 여전한 것 같네요.

“각종 행사다, 시상식이다,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어제는 감기까지 걸려 여간 힘든 게 아니야. 그래도 할 수 있나, 참석해야지 허허. 일구 대상을 받게 된 것도 좀 쑥스럽구먼. 이번 우승이 나 혼자 한 일이 아닌데 말이야.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트레이너, 말없이 고생한 KBO 직원들 모두가 일군 성과인데….”

(마침 이날 한국프로야구 OB 모임인 ㈔일구회는 올해 대상으로 김 감독을 선정해 발표했다. 유일한 두 차례 수상자가 된 것이다. 극구 사양했지만 선정위원 전원의 간청을 받아들여 상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프리미어12 우승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처음 대표팀을 꾸릴 때는 괜찮다고 하는 선수들이 좀 있었지. 그런데 부상으로 인해 도중에 탈락하는 선수들도 나타났고, 막판에는 불미스러운 일로 세 선수가 빠졌다. 결국 10명 정도가 교체됐다. 그래서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을 때 국가관이 확실하게 생기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국가의 명예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힘껏 노력하자’라고. 경기를 할수록 뭉치는 게 보였다. 결국 개인이 아닌 ‘코리아’라는 팀워크가 우승을 일군 것이라 봐야지.”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완패했는데 그때 선수들에게 무슨 얘기를 했나요.

“선발투수 오타니 쇼헤이의 공이 워낙 좋았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참 불가항력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렇지만 좌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이제 첫 경기에 불과하다. 빨리 잊고 새로 시작하자’고 독려했지.”



-일본과의 4강전을 앞두고, 그리고 경기 후에는 무슨 말을 해주셨는지.

“선수들도 두 번 질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대단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복수심이 넘쳐났다. 경기 전 ‘신경을 안 쓸 수는 없겠지만 마음 편하게 하자. 그러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다’고 다독거렸어. 경기 후에는 ‘코리아의 이름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애기해 줬어.”



-8회까지 0-3으로 졌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오타니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지만 ‘한 번은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고, 정말 한 번의 찬스를 살렸다. 투수가 교체됐고, 그때 우리 선수들이 오타니의 시속 160㎞에 육박하는 공을 보다가 시속 150㎞ 중반대를 뿌리는 노리모토 다카히로의 공을 보니까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지. 9회초 대타로 오재원과 손아섭 중 누구를 먼저 내느냐를 놓고 고민도 있었지. 오재원이 아무래도 손아섭보다 빠르고 해서 먼저 내보냈다. 그런데 그게 요행히 맞아떨어졌다. 이대호의 역전타가 터질 땐 2006년 WBC 일본과의 경기서 1-2로 뒤지다 이승엽의 투런포로 3대 2 역전승을 거뒀을 때보다 더 극적이고 짜릿했어.”

-미국과의 결승전은 비교적 수월했는데.

“미국 투수들이 아무래도 일본보다 한 수 아래였던 것 같다. 미국 투수의 공이 빨랐지만 그래도 오타니 투수 정도는 아니었어. 일본전 역전승으로 상승세를 탄 게 바로 결승전에서 미국을 압도한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지.”



-일본, 미국과 비교한다면 한국 야구의 현주소는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는지.

“비록 우승했지만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한국 야구의 부족한 점도 많이 보였다. 6, 7회에도 구속이 떨어지지 않는 일본 투수, 강력한 송구를 하는 미국 외야수 등을 보며 부러웠다. 공격적인 측면에서 한국 야구는 강점을 보였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표팀 전임 감독제 도입이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나도 한화 이글스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2006, 2009 WBC를 치렀다. 현역 프로야구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 건 사실 무척 부담스럽다. 대표팀 전임 감독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계속 대표팀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야구팬도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후배들이 해 줬으면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되도록 현직에 있지 않은 젊은 감독이 대표팀 전임 감독을 했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이제 그만해도 될 듯하다. 허허.”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 때마다 축하나 격려 문자를 보냈다면서요.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화의 마무리캠프를 지휘 중인 김성근 감독이 우리가 삿포로에서 시합할 때 슈크림을 보내기도 했다. 이길 때마다 ‘정말 잘하더라’ ‘훌륭하다’ ‘역시 대단하다’는 축하 문자를 보내주셨고 통화도 가끔 했다.”

(김성근 감독과 김인식 감독은 김응용 전 한화 감독과 함께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장들이다. 41년생인 김응용 감독이 통산 1567승으로 최다승 1위, 42년생인 김성근 감독이 1302승으로 2위, 47년생인 김인식 감독이 980승으로 3위다. ‘프로야구의 3김’이라고 불리는 세 명장이 거둔 승수만 총 3849승이다.)



-건강은 어떤가.

“12월 4일이면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 꼭 11년이다.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 타기, 걷기 등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해 많이 좋아졌다. 걷는 게 아직 부자연스럽지만 말이야. 그런데 대회 기간에는 매일 하던 운동을 못해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감기까지 걸려 좀 힘들다.”

(김 감독은 한화 감독 시절인 2004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당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 여섯 시간 재활에 열중한 끝에 한 달 만에 혼자 서서 걸을 수 있었다. 비록 다리는 많이 절었지만 야구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불굴의 의지가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지도자상은.

“감독은 보는 눈이 있어야 되고, 순간적으로 머리로 생각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다. 냉철한 가슴이 있어야 되고, 때로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배려의 마음으로 팀을 이끌어가야 한다. 나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 허허.”



-감독님은 야구의 경지에 오른 분이잖아요. 한마디로 야구는 무엇인가요.

“‘야구는 너무 어렵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 왜 이게 어려운가 하면 잘될 때는 순간적으로 짜릿하고 좋지만 안 될 때는 너무 많은 비난을 받는 게 야구잖아.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야구인 것 같아. 이번만 하더라도 일본 고쿠보 히로키(44) 감독, 젊은 감독이 큰 시련을 겪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해. 세상살이도 그렇듯 좌절과 실패를 반드시 겪어야만 좋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싶어.”

만난 사람=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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