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국인에 묻다] ‘야근공화국’ 얻은 건 질병이란 불청객… 출근은 있지만 퇴근이 없는 근로현장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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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 여기에 노사 합의 아래 12시간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다. 즉, 근로자가 1주일에 최대로 일하는 법정 근로시간은 52시간이다. 2011년부터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원의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고용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근로자는 357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9.0%를 차지했다. 주 40시간을 넘긴 근로자로 범위를 넓히면 54.3%에 이른다. 절반이 넘는 근로자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다. 제도를 바꾸고 규제를 해도 장시간 근로라는 악습은 여전하다.

현실 앞에 법정근로시간 있으나마나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김모(33)씨는 자정이 가까워 퇴근하는 일이 잦다. 오전 8시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초과근로수당은 받지 못한다. 주말에 일해도 휴일수당은 없다. 연장근로·야근수당 등을 급여에 포함해 임금으로 정한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추가로 야근·휴일근로수당 등을 줄 필요가 없는 포괄임금제를 선호한다. 이렇게 근로계약을 하면 출근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은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주어진 일이 끝나는 때가 퇴근시간이다. 노동연구원이 2010년 직장인 1만15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2%가 포괄임금제였다.

다른 자동차 부품업체의 관리직인 김모(25·여)씨는 퇴근 때만 되면 눈치를 살핀다. 이사부터 팀장까지 상사들은 업무시간(오전 8시∼오후 6시)이 끝난 뒤에도 ‘당연히’ 회사에 남는다. 공정이 종료되는 오후 9시가 넘어야 일어선다. 김씨 회사는 야근수당을 따로 주지 않는데도 직원의 절반 이상이 업무시간을 넘겨 일한다.

생산설비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가동되는 교대근무제는 장시간 근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완성차 업계에선 ‘10/10’(하루 8시간 노동에 2시간 고정 잔업 추가)이라 불리는 2교대가 고착돼 왔다. 휴일근로도 거의 매주 이뤄진다. 2011년 현대자동차 기술직 노동자는 2678시간을 근무했다. 현대차는 2012년 노사 합의를 거쳐 이를 주간연속 2교대로 바꾸기로 했다. 내년 3월까지 8시간 노동을 하며 서로 교대하는 ‘8/8’ 형태를 도입한다.

대학병원 간호사 박모(26)씨는 3교대로 쉬는 시간 없이 일한다. 3교대는 ‘낮 근무’(오전 7시∼오후 3시) ‘저녁 근무’(오후 2∼11시) ‘밤 근무’(오후 10시∼오전 8시)로 구성된다. 실제 근무시간은 1시간∼1시간30분 더 길게 이어진다. 환자가 몰리는 시간에는 ‘칼퇴근’을 할 수 없다. 박씨는 차트 관리, 의사와 환자 간 소통, 관장·투약 등 잡다한 업무부터 응급환자 관리에까지 투입된다. 업무 중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고 식사를 거르는 게 일상이다.

“아빠 몇시에 와” “야근이니 먼저 자”

에너지 관련 대기업의 계열사에 다녔던 오모(54)씨는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했다. 암 발생 초기에 발견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의사는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권하면서 술을 멀리 하라고 했다. 오씨는 수술자국을 훈장처럼 안고 30년을 바쳤던 직장을 떠났다.

젊은 직장인에게도 직업병 혹은 직업 관련성 질병이 찾아온다. 대학병원 간호사 박씨는 소화제를 달고 산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 폭식을 하거나 짧은 시간에 급하게 끼니를 때우면서 만성 위염을 앓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사람이 건강을 해치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했다.

제조업계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29)씨는 매년 건강검진 때가 오면 두렵다. 이씨는 “잦은 야근과 술자리 등으로 체중이 늘고 건강도 나빠진 것이 느껴지지만 그것을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르다”며 “나이가 많은 상사들 중에는 건강을 심하게 해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나의 미래인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초과근로는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지난 8월 “초과근무를 자주 하는 근로자들은 정상 노동시간 근무자들보다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초과근무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심장병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노출될 시간을 늘린다.

사람 잡는 야근… 건강검진이 두렵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현황분석’에 따르면 2013년에 업무상 질병에 걸린 사람은 7627명이었다. 허리 통증이 3696명으로 가장 많았다. 진폐·특정화학물질 중독 등은 1414명, 뇌·심혈관 질환은 684명이었다. 뇌·심혈관 질환자 중 348명이 사망에까지 이르렀다.

근로자가 건강해야 기업도 각종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바로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면 장시간 근로, 잦은 야근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이 고리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근로시간 단축이다. 안태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이 건강 습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규칙적인 운동습관 확률을 높이고 흡연율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이 장시간 근로가 관행이 된 사회에서 근로자가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결국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 김 선임연구원은 “특례사업이나 5인 미만 사업장 등 예외로 규정된 부분을 축소해야 한다. 법이 있고 벌칙이 있어도 벌칙 적용을 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과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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