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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뷰- 김태황] 청년 구직 용돈의 함정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은 손쉬운 인심쓰기… 일용할 양식 필요하나 실천력·성찰이 더 중요

[월드뷰- 김태황] 청년 구직 용돈의 함정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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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의 어깨가 무겁다.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던져주지 못하는 부모세대 마음도 답답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정책 사업 명분으로 ‘구직 용돈’ 나누어 주기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저소득 가구의 청년 3000명에게 연간 최대 180억원의 ‘사회참여활동비’를 지원하려고 한다. 성남시는 19∼24세 모든 청년에게 내년부터 연간 100만원씩 총 113억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구직 활동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솜사탕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감이 깊다.

청년 ‘사회참여활동비’ 또는 ‘배당’은 치열한 취업전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책임감에서 창안된 시책일 것이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청년 인력을 육성하는 관점과 방식으로는 안일한 측면이 있다. 청년 취업난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시간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취업난이 용돈 부족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곡해되어서는 안 된다. 산업이 발달하고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전자의 수가 후자보다 많거나 그 속도가 더 빠르다면 구조적으로 일자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는 10억원 규모의 산업 생산량이 발생하면 10개의 일자리가 필요했는데 2010년에는 18%가 감소했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해당 일자리 수는 줄어든다. 그래서 새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것이다.

청년 취업지원 정책은 일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비록 오후 5시에 일거리를 주면 일할 시간이 한두 시간에 불과하더라도 거저 용돈을 주기보다는 정당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일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특히 구직 초기 청년들에게는 잠재적 업무 처리 능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실제 현장 학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자기소개서의 경쟁력은 문장력이 아니라 내세울 학습 내용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지자체는 손쉬운 용돈 주기보다는 까다롭더라도 일자리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서울시의 경우 청년정책 기본계획에는 청년 활동 지원, 뉴딜 일자리 제공, 주거생활 금융과 활동공간 지원 등 4개 분야에서 20개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뉴딜 일자리 사업의 공공인턴제도도 일의 내용보다는 인건비 지급을 강조하고 있다.

일과 용돈을 혼동시켜서는 안 된다. 용돈은 일을 통해 벌어야 하는 산물이 돼야 한다. 용돈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공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공금을 거저 주는 것은 손쉬운 인심 쓰기이다. 공짜로 주거나 받기에 익숙해지면 몸도 마음도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청년들은 소일거리 같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찾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양질의 노동력과 양호한 근로조건의 결합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야 보다 높은 수준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소득과 소비가 증대되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한다.

지자체뿐 아니라 우리 사회단체들은 기업인들이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기업인들은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기부하고 청년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순발력을 활용할 수 있다. 구직 초년생의 경우 인턴십과 단기 계약직 업무를 경험해 보는 것도 유익한 자산이 될 것이다. 정식 근로자가 아니므로 신선한 발상과 관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기업이 정규직을 대체해 노동비용을 절감하려는 방편으로 악용하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는 일자리 기부문화 창달에 동참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재를 수월하게 영입하는 만큼 중소기업과 청년 인력들에게 비록 단기라 하더라도 직업교육훈련의 거래비용을 지불하자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일용할 양식도 필요하지만 일상의 성찰과 실천력은 더욱 중요하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불안감에 함몰되어 있는 예비 지도자(여호수아)에게 제시하신 난국 타결 해법이 이것이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고 단련의 길에 담대하게 들어서야 한다. 시작이 힘들다고 단련을 소홀히 하거나 우회할 수는 없다. 청년을 편하고 쉬운 길로 우선 인도하려는 지도자는 비록 부모의 마음을 가졌을지라도 청년을 청년답게 키우지 못한다. 청년이 어른이 되는 길로 인도해야 한다.

<본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김태황 명지대 교수 국제통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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