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겨자씨 종지 기사의 사진
조선의 팔천(八賤). 노비, 광대, 대장장이와 옹기장이, 도살업자, 기생, 무당, 승려, 상여꾼이다. 싸잡아 백정이라 불렀고 별도로 호적을 관리했다. 어쨌든 사회학적으로 판단하자면 종교인은 팔천이다.

팔천을 벗어난 이가 상놈이다. 얼핏 상놈은 보통사람 즉 서민을 칭하는 소리로 들리나 ‘놈’이라 했으니 비천한 계급이기는 마찬가지였던가 보다. 그 상놈은 조선 중기 노비들이 악착같이 돈을 모아 양반인 주인댁에 바치고 노비문서를 없앤 이들이다. 평민, 중인, 양민이라고도 한다. 한데 이 사정 뻔히 아는 양반의 눈엔 그저 ‘놈’일 뿐이다.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을 쓴 한국학의 대가 에드워드 와그너(작고·미 하버드대 교수) 논문 ‘1663년 한성부 북부지역 호적을 통해 본 조선사회의 구조’를 보면 괜히 ‘움찔’해진다. 그가 지금의 서울 마포·서대문구 일대 681호 총인구 2374명의 신분 분석을 한 결과 양반은 220명(9.27%)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상놈은 334명으로 14.7%이다. 나머지 76.7%는 팔천이다. …내참, 내 족보를 캐면 안 될 듯싶다. 또 임진왜란 당시 서울 인구가 12만여명이었고 그중 절반은 가축처럼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는 노비였다. 왕실은 노비를 양반에게 포상으로 주었다. ‘한확에게 노비 10구를 내려주다.’(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1월)

와그너 교수는 1684년의 대구 지역 신분 분포도를 조사했는데 이 역시 양반 5%, 상놈 20% 전후에 불과했다. 75%는 팔천인 셈이다. 한데 1858년이 되면 양반 호적 인구가 70.3%에 이른다. 매관매직의 결과다. “솔직히 말하자면…”이란 우리 관용구는 바로 이 신분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너나없이 굶고 천대받았던 상놈의 자식일 뿐이다. 호적 연구 학자들에 의하면 그 시대 우리나라와 인도만 계급 박해가 심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이 ‘수저 계급론’이 청년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칭하는 유행어 ‘헬조선’에 ‘조선’이 붙은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수저 계급론은 불가능한 신분 상승에 대한 절망감과 가진 자의 탐욕을 빗댔다고 하겠다.

반면 이번 주 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31)의 기부가 화제가 됐다. 무려 52조원 부자가 주식 99%를 사회 환원하겠다고 한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저커버그의 신생아 딸이 ‘제일 행복할 선언’이었다고 믿는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성서의 이 표현 속에는 굶주림에 시달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망이 담겼다. 물질을 신으로 삼은 바알 신앙 권력자들과 투쟁했던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 땅과 그 땅의 생산물이 특권층에 독점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땅’, 즉 하나님 공동체(행 2장)를 제시했다. 성만찬이 모든 걸 설명해 준다. 또 예수는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 절반을 나누겠다는 삭개오에게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말했다.

팔천은 밥의 문제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 6:35) 아쉽게도 ‘헬조선’은 이 복음을 몰랐다. 선교사들이 들어와서야 알았다. 선교사들은 고봉밥을 먹는 조선인을 두고 ‘식탐이 유난하다’는 선교보고를 본국에 올리며 ‘양반들의 착취로 언제 먹게 될지 모르니 그리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제 ‘헬조선’은 배를 채웠다. 복음을 받아들이자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굶주림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데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루분이다. 하루가 지나면 썩어 버린다. 이 얼마나 지혜로우신 하나님인가.

이는 저커버그와 같이 믿음과 사랑이라는 겨자씨를 종지에 담아 뿌리지 않으면 땅 위에 생명이 없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호적 샀다고 겨자씨 종지에 간장 담아 찍어 먹을 생각 말았으면 한다.

전정희 종교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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