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석현] 기부는 인격이다 기사의 사진
인류 역사상 가장 몸값 비싼 아기가 지난주에 태어났습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딸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출산을 기념하여 저커버그 부부가 약속한 기부금이 우리 돈으로 무려 52조원. 새해 우리나라 국방예산(38조8000억원)보다 많고, 복지예산(55조8000억원)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존엄한 새 생명에게 무례하게 ‘몸값’이란 말을 갖다 붙인 건, 그로 인해 앞으로 창출될 엄청난 부가가치를 실감나게 전할 표현이 달리 떠오르지 않아서입니다. 그 돈을, 일회성 기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사업에 투자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게 저커버그의 계획입니다. 말대로라면 그가 만들어낼 가치는 훨씬 커질 것입니다.

미국은 국민 60% 이상이 기부에 참여하고, 기부금 규모가 GDP(국내총생산)의 2%나 됩니다. 그 탄탄한 민간 복지 재원이 더 든든해지게 된 것입니다. 저커버그 부부를 본뜬 미국 민초들의 ‘기념일 기부’도 여기저기 유행할 것 같습니다.

저커버그의 소식을 접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그렇다고 미국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입니다. 우리에게도 기념일 기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저커버그도 수두룩합니다. 사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코흘리개이던 15년 전 생일 아침. 부모님으로부터 돼지저금통을 하나씩 선물 받은 쌍둥이 남매가 있었습니다. 용돈과 세뱃돈을 아껴 저금통을 채우며 자랐습니다. 꽉 차면 은행에 저금하고 다시 채웠습니다. 세 살 어린 동생도 따라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란히 대학에 합격한 지난해 겨울, 남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모은 돈이 자그마치 350만원. 생각 끝에 남매는 이 돈을 자신들의 등록금에 보태기보다 더 뜻 깊은 데 쓰기로 했습니다. 오랜 세월 소중히 모은 돈을 들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은 전북 익산의 삼남매 이야기입니다. 부모님께는 이렇게 약속했다 합니다. “대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탈 게요.”

남매의 기부금은 보호받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값지게 지원되었습니다. 방법은 달랐지만 사려 깊은 생일선물로 아이들을 건강한 인격으로 이끄신 그 부모님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저커버그 부부입니다. 아이들이 바른 인성을 키워가는 길에 나눔과 배려만큼 좋은 친구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와 빗대지 말자’입니다. “우리에겐 왜 저커버그가 없는 거야.” “우리 재벌들은 뭐 하노.” 이렇게 삐죽거리는 건 금물입니다. 저커버그 기부 소식 직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커버그 때문에 갑자기 부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생기는 건 아닐까.’

그건 옳지 못합니다. 부자여야 기부를 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큰돈이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런 현실을 떠올려봅시다. 기부가 줄면 지금까지 기부금으로 간신히 삶을 지탱해온 누군가가 한 가닥 생명줄을 놓아야 하는 냉혹한 일이 생긴다는 사실. 내가 지금, 내 주머니 형편만큼만 나누면 그런 가슴 아픈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기부는 인격이고, 기부문화의 수준은 국격이라 합니다. 나도 비록 넉넉지 못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게 우리의 DNA입니다. 18년 전 외환위기 때 온 국민이 나섰던 금 모으기운동은 다른 민족은 결코 흉내 못 낼 일입니다. 우리의 품격은 그만큼 높습니다.

올 연말에도 전국 도심에 사랑의온도탑이 세워졌습니다. 이 겨울, 나의 작은 기부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자며 저렇게 서 있습니다.

김석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