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다시 포용의 리더십을 기대하다 기사의 사진
훈훈하고 따뜻해야 할 세밑이 을씨년스럽다. 올 한해를 돌아보고 갈무리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정서가 충만할 때 다정다감한 세밑이 될 터인데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에서도 ‘남’은 보이지 않고 ‘나’만 존재한다. 세대·계층·지역 간 갈등에 더해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는 모든 합리적 사고와 논의의 틀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 지 오래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은신해 있던 조계사에서 나와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진작 그랬다면 보다 명예로웠을 것이다. 그의 주의·주장은 투사의 그것처럼 신념에서 우러나왔을지 모르나 행동은 비겁했다. 말을 여러 차례 바꿔하며 종교의 보호막에 숨어 자유를 구걸하기 바빴다. 그에게서 구차하게 연명하기보다 떳떳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투사의 용기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민노총 주장대로 ‘노동 5법’이 악법이라면 폭력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정당당한 길을 갔어야 옳았다. 한 위원장의 오판은 민노총의 기대와 달리 결과적으로 노동 5법 입법을 관철시키려는 박근혜정부의 명분만 강화시켜주는 셈이 됐다. 목적이 정의로우려면 수단 또한 거기에 부합해야 한다. 그래야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정의를 쟁취할 수는 없다.

종교계의 역할이 빛났다. 사생결단의 대결국면에서 몇 차례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와 설득으로 한 위원장과 경찰 양측을 중재한 종교계의 역할이 없었다면 파국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설득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때론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인고가 따르더라도 어느 한쪽을 패자로 만들지 않는 이런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노동 5법 처리에 소극적인 새정치민주연합을 겨냥해 “국민 분노가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언제부턴가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격정을 토로하는 자리로 변모했다. 대통령의 언어엔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있다. 설득은 없고 지시, 명령, 호통만 있다. 대통령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혼이 비정상이고,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갈등을 조정, 중재해야 할 대통령이 외려 갈등을 유발하고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사시 폐지 4년 유예를 주장하면서 그 공을 국회로 떠넘긴 법무부도 마찬가지다. 갈등을 조정할 시도조차 않는 정부가 과연 정부인지 묻고 싶다. 야당만 탓할 계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한국사회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사회갈등지수 국제비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24개 OECD 가입국 가운데 5위다. 그런데 갈등관리지수는 조사 대상 34개국 중 27위로 낙제점이다. 갈등을 조정, 중재할 정치적·사회적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하다는 얘기다.

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백남기씨가 20여일째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가 집시법을 위반했는지는 몰라도 IS는 아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다. 원수를 사랑까진 못해도 네 편도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한 리더십을 보고 싶다. 박 대통령도 그러고 싶어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던 것일 게다. 세밑엔 묵은 앙금을 털고 새 마음, 새 각오로 다가올 새해를 준비한다. 내 탓은 없는지 돌아봐야 하는 요즘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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