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정현수]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지난달 중순 밤늦게 어머니는 전화를 하셔서 “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랑 무슨 기초연금인가 받을 수 있다 하던데 너무 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여든을 넘기신 두 분은 경북 구미에 따로 산다. 평생 농사일을 버텨온 몸이 몇 년새 고장이 나기 시작해 일을 못 한다. 그런 두 분에게 그나마 세상물정에 더 밝은 한 동네 어르신이 지난해 7월부터 기초연금 제도가 시행됐다고 알려줬던 모양이다.

외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도 면사무소를 당장 찾아가지는 않았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벌써 나랏돈을 타서 쓰고 있는데, 거기다 더 받을 수 있겠나”고 지레 짐작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복부에 총을 맞았다. 한 달에 40만원씩 국가유공자 연금을 받고 있다. 동네 어르신은 그런 외할머니가 답답했던지 “일단 가서 물어봐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그로부터 1주일 후인 지난 10월에야 면사무소에 기초연금을 신청해 지급 대상자가 됐다.

외할머니는 제도를 몰라서 신청하지 못한 기간 동안의 연금도 당연히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연금은 신청 이후만 지급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계산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몰라서 못 받은 연금이 700만원쯤 된다며 “이게 정말 못 받는 돈인지 한번 알아봐주겠니” 부탁했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돈이지만 두 분에게는 당장에 아쉬운 액수였다. 나름 법조출입 기자랍시고 ‘소급’ 따위의 어려운 말을 써가며 어머니에게 알겠다고 했다.

비슷한 처지의 어르신들이 많았나 보다. 네이버 지식인 코너에 같은 질문과 보건복지부의 같은 답변만 여러 개였다. ‘따라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초연금을 늦게 신청하신 경우라 하더라도 신청 이후 소득·재산 상태를 조사해 선정 기준에 적합해야 수급권이 발생하므로 소급해 지급하기 어려움을 안내해 드립니다.’ 어려운 말로 ‘신청주의’라고 하는데, 모든 복지급여가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빨리 체념했고, 어머니와 나는 “그 촌에 사는 노인네들이 누가 말 안 해주면 그런 제도가 있는지 어떻게 아노. 뭐 이런 개떡 같은 법이 다 있노”하며 전화로 성토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기자는 신청주의라는 복지급여 원칙을 시비하기엔 무지하다. 다만 예의를 얘기하고 싶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처럼 젊은 시절 고된 노동으로 골병이 들어가며 꼬박꼬박 세금을 내도, 나라의 지원이 간절할 때가 되면 ‘알아서 신청하라’고 한다. 누구 하나 나서서 컴퓨터도 쓸 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그들을 위한 제도를 알려주지 않는다. 겨우 알고도 “내가 받아도 되나”를 먼저 고민하는 노인들이 서글프다. 외할머니는 이 제도가 자기 손으로 뽑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른다.

그 노인들의 어른들에게도 그랬다. 일제에 강제징용으로, 위안부로 끌려간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한을 50년 전 일본에서 5억 달러를 빌려오면서 홀랑 팔아먹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합의의사록에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받을 때 강제징용자 부분이 포함됐고, 우리 정부가 신문 공고를 통해 1975∼77년 3년간 다 지불했다.” 일본정부의 입장이 아니다. 일제 강점 피해자 300여명이 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적포기서를 제출하겠다고 하자 2003년 외교통상부가 내놓은 설명이다. ‘알아서 받아가라’다.

논란이 커지자 특별법을 만든 정부는 일본에 있는 전범기업이 낸 공탁금을 1엔당 2000원으로 계산해 ‘위로금’ 형식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1945년 이후 물가상승분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였다. 2009년 한 언론사는 1945년 이후 금값이 14만배 올랐다고 보도했다. 그 어르신 중 돌아가신 한 분의 딸이 한일청구권협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은 최장기 미제사건이 돼 아직도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겨우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인정됐지만 실제 집행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

외할머니는 지난달 말에 처음으로 기초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두 분에게 할당된 금액은 4만원이었다. 외할머니가 사는 7000만원짜리 집과 이제는 더 일굴 사람도 없는 땅뙈기가 재산으로 반영됐단다. 외할머니는 “내가 재산이 너무 많단다. 4만원. 거 참 노력한 값도 안 되네” 하시며 허탈해했다. 돈이 많다는 우리 외할머니는 아파 병원에 갈 때도, 돈이 없어 택시를 타지 않는다.

정현수 사회부 기자 jukebox@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