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윤중식] 요르단 느보산 놋뱀과 모세 기사의 사진
난생 처음으로 성지순례 선물을 받고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속으로 “이스라엘이면 더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권 사본을 보내고 잊고 있었는데 10여일 후 지난달 13일의 금요일에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냥 멍했다. “어떡하지, 몸이 아파서 도저히 갈 수 없다고 할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숭숭한 밤이었다. 날 잡아놓으면 금방이듯, 11월 셋째 주일(15일) 아침은 유난히 더 빠르게 왔다. 지난달 15일 오후 1시쯤 인천공항을 떠난 지 11시간 50분 만에 터키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요르단 아카바 공항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출발 직전, 20대 후반의 수상한 두 남자가 탑승하면서 일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승무원과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보안요원이 들어와 승객은 물론 화물도 다시 내려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탈 비행기가 통째로 바뀐 상태였다. 사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소동이 있은 뒤 비행기는 다시 이륙, 아카바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알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한국인 탑승객 중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 때문에 한참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지순례가 시작됐다. 화성을 옮겨놓은 듯한 ‘와디럼’과 세상의 그 어떤 궁전보다 황홀해 보이는 페트라의 알카자나 신전 등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곳이 수두룩했다. 아카바에서 암만까지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 100가지나 될 정도로 온 국토가 성지였다. 가나안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그 흔적뿐 아니라 세례 요한, 엘리야 그리고 사도 바울의 발차취도 더듬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곳, 느보산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마음의 성지가 됐다. 그곳은 모세오경의 끝이고 신명기 34장의 배경이다. 느보산 정상에 있는 모세기념교회 앞마당에 서면 우물터가 있고 모세가 바라보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옆에는 모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십자가 형태의 놋뱀 조각물이 세워져 있지만 생각 없이 지나치기 일쑤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조각물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다. 바로 요한복음 16장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들 주셨으니…영생을 얻게 하심이라”는 말씀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모세는 당시 40년이라는 출애굽 여정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작정한 날로부터 80년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포기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얼마나 애통해했을까.

모세가 죽을 때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 수많은 백성들은 산 밑에서 그의 이름을 외치며 간절히 함께 가기를 원했지만 여호수아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모세는 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절대 순종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만약 그가 약속의 땅을 밟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권력다툼에 만신창이가 돼 결코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덤을 남겼다면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되는 우를 범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기에, 그만큼 그를 사랑하기에 그의 삶을 여기서 마치도록 했다.

매년 12월 크리스마스 때 많은 기독교인이 모세기념교회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린다. 사해에 긴 그림자를 남기며 해가 지는 지금, 저무는 한 해를 생각하며 요르단 성지순례를 마치면서 홀연히 사라진 모세의 삶을 통해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지 되새겨보았다.

윤중식 종교기획부 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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